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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에이프만 발레 차이코프스키 - 자아와 이미지의 대립 본문

발 레/현대 발레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 차이코프스키 - 자아와 이미지의 대립

유쾌한 인문학 2010. 11. 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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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는 러시아의 보리스 에이프만.  1993년에 상페떼부르크에서 초연되었고 국내에선 올해 국립발레단에 의해 처음 초연되었습니다.   올초에는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이 내한했었는데 그때 안나 카레니나를 전국 순회하면서 공연했었죠.  보리스 에이프만 작품은 안나 카레니나와 차이코프스키 밖에 못봤지만 이 두작품만으로도 확연히 들어나는 그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다양한 상징들과 인간의 정신적 철학적 문제에 대한 고찰이죠.  이 작품에서 사용한 음악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현을 위한 세레나데, 교향곡 6번 비창 4악장.  이정도가 기억이 나는군요.


차이코프스키
이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차이코프스키에 대해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가장 큰 특징은 동성애자라는거죠.  당시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들켰다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죠. 

이러한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에는 아주 뚜렷한 두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한명은 그의 부인인 밀류코바 그리고 다른 한명은 그의 후원자였던 폰 멕 부인.

사실 동성애자인 차이코프스키가 결혼을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기 위해서이죠.  그래서 그는 밀류코바와 그냥 대충 결혼을 합니다.  밀류코바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말이죠.  이런 결혼 생활이 행복했겠습니까?  이 결혼은 아주 불행한 결과만을 불러왔을뿐이죠.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정말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폰 멕 부인은 어떤사람일까요?  사랑했던 사이?  그런건 아니고 후원자였습니다.  연간 6000루블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약 10여년동안 차이코프스키에게 후원하죠.  웃긴건 이 둘은 그 넓은 러시아에서 무려 3000여통에 달하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는겁니다.  대단하죠. 


차이코프스키의 첫번째 소외
이 작품에서 차이코프스키는 총 두명이 나옵니다.  본인과 자신의 분신이죠.  이두명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코프스키의 분열된 두 자아를 상징합니다. 

이 두명은 같은 옷을 입은채 5번 교향곡 1악장에서 파드되(2인무)를 춥니다.  아주 멋지죠.  그런데 이 안무를 유심히 보면 마치 거울을 보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게 되죠.  왜 그렇게 안무를 짰을까요?

헤겔의 변증법.  변증법의 핵심은 테제와 안티테제에 있습니다.  양자는 대립되고 서로 마주보게 되죠.   테제는 안티테제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죠.  합으로 나아간들 다시 안티테제는 나타날 수 밖에없죠.  이를 확장해보면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주체가 성립할려면 단순히 내가 날 인식하는것만으론 불가능하고 상대방에 의해 인간 주체로 인식이 되어야 하는거죠.  마치 거울을 보듯이 말입니다.

보통 거울을 보게되면 나와 똑같은 사람이 비치죠.  내가 팔을 움직이면 거울속의 사람도 팔을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울을 1살도 안된 아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요.  일단 거울을 보고 그속에 사람이 자신이라는 인식을 어느 순간 하겠죠.  거울안의 자신은 완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현실의 자신은 자신의 몸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거울속의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죠.  바로 이지점에서 소외가 발생하게 됩니다.  자아는 거울속의 이미지가 진정한 자신이라고 착각을 유도하고 그것을 유지하게 되는거죠.  바로 이미지와 주체의 분열입니다.

차이코프스키 역시 마찬가지죠.  거울속의 이미지는 완전합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고 존경받는 작곡자로서의 삶도 보이죠.  하지만 진짜 자신은 어떠합니까?  아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론 아주 불안정한 동성애자이고 성격은 정말 소심하구요.  결국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이지요.

이러한 이미지속의 자신을 현실의 자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자아를 깨우는 장치가 존재합니다.  호두까기인형에서 나오는 드로셀마이어이지요.  호두까기 인형에서 드로셀마이어는 클라라에게 순수한 동화속 왕자를 선물했지만 차이코프스키에게는 동성애를 자극하는 아주 매력적인 왕자를 선물하지요. 


차이코프스키의 두번째 소외
아무튼 작품내에서 차이코프스키는 백조군무를 통해서 어느정도 안정을 유지하게 되죠.  거울속에 존재하는 완전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한편 폰 멕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에게 음악가로서의 길을 강조하죠. 

결국 밀류코바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는 역시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인상깊은 상징은 밀류코바의 드레스에서 나온 길다란 하얀색 천인데요.  그 천을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온몸으로 칭칭 조이게 되죠.  전형적인 속박의 상징입니다. 

1막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주위에 사람들이 둥글게 나열한채 차이코프스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때 아마 자신의 분신과 춤을 추고 있었던걸로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조금 뒤에 결혼식을 올리고 나니 사람들이 축복을 해주는거죠.

안타까운 장면이죠.  사실 뭐 차이코프스키만 그렇겠습니까?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사람이 존재할려면 타자에 의해 인식이 되어야 하는데 타자의 인식은 결국 이미지에 불과하다는거죠.  뭐 이런거 있잖습니까?  타인이 나라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재단하는거 말입니다.  그게 바로 타인에 의해 인식된 이미지죠.  결국 나와 타인에 의해 상상된 이미지는 또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소외죠.  이것이 두번째 소외입니다.  

작품내의 차이코프스키도 마찬가지죠.  자신 내부에서의 소외와 더불어 타인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의해 두번째 소외가 일어납니다.  자신 내부의 소외도 감당이 안되는 판에 두번째 소외가 발생하니 이 소심한 성격의 사람이 어떻게 견딜까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억이 안나서 더이상은 무리입니다.  아무튼 보리스 에이프만의 차이코프스키는 이렇게 차이코프스키가 느낀 자아의 분열, 고독, 소외를 너무나도 잘그려낸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 뒷이야기
저는 불행히도 13일 공연을 봤는데 덕분에 말라코프를 그만 못봤네요.  보리스 에이프만 작품들은 DVD가 없습니다.  그냥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짧은 동영상이 전부다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작품에 대한 글을 쓴다는건 좀 무리가 따르죠.  제가 서울에 살았다면 아마 금,토,일 세번 보러갔을겁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게 현실이고 단 한번.  그 한번의 관람으로 뽑아낼 수 있는건 다 뽑아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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