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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적과 흑, 욕망과 혁명의 사이에서 본문

인 문/문 학

스탕달 적과 흑, 욕망과 혁명의 사이에서

유쾌한 인문학 2010. 6. 30.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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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지층이 사라지고 새로운 지층이 생겨난다는 것은 새로운 상황, 새로운 생활양식의 탄생을 의미하고 이러한 새로움의 탄생은 스스로 과거와의 단절을 불러오게 된다.  지층을 가로지르는 경계의 강렬함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강렬함을 내포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흔히 19세기라고 부르는 그 시작점.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흔히 19세기의 시작은 1830년대부터라고 칭하곤 하며 이때부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지층으로서 동질성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19세기적 지층구조는 현대라는 또다른 지층구조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끌어낼 수 있는바 그것은 근접한 정신적 동일성을 가진 근대인이라는 측면일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동일성은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유사점을 보여준다.

당시의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면 상당히 복잡다단하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실상 권력은 부르주아층이 가지게 되며 귀족은 그냥 명맥만을 이어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대혁명 당시에는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이 혼재된상태로 계급투쟁을 하였지만 이러한 시민계급 혁명이 완성된 후 플롤레타리아 계급의 소외를 통해 또다른 계급투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상황을 문학이라는 측면으로 다시 좁혀 보았을때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18세기까지는 작가란 자기 독자층의 대변인에 불과하다.  그들은 한정된 독자층을 위해서만 작품을 썼고 새로운 독자층을 얻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현실의 독자와 잠재적 독자 사이의 긴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하지만 18세기에 이르러 독자층은 양분되고 대립되는 경향을 보여주면서 예술가 역시 대립양상을 띄게 된다.  이른바 보수적 귀족과 진보적 부르주아의 대립이다.  사실 이러한 대립은 단순히 양진영논리로 바라보는 것보다 보수와 진보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던 새로운 귀족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시점의 상승계급인 부르즈아는 노동자계급과 혼재된 상태의 계급투쟁을 하게 되고 문학은 이러한 억압된 계급을 위한 새로운 가치관의 창조에 일조하게 된다.  즉 이시대의 상승계급을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 공급과 귀족의 경제적 비호의 사이에 선 작가는 보편적 이성을 구현하는 인간을 지향하여 귀족에 대한 견제와 상승계급의 의식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다시 19세기의 초입. 즉 왕정복고와 1830년 혁명기에 이르러 상승계급이었던 부르주아가 억압계급으로 바뀌면서 작가의 소외가 발생한다.  즉 부르주아 출신인 작가가 자기 계급을 위한 글을 쓸수 없는 없는 역설에 처하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대혁명 이후로의 회귀와 동시에 자신의 글이 사회적 문화적 억압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1830년 혁명이 불러온 강렬함은 귀족의 완전한 패배와 동시에 그들 스스로를 서로서로 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버렸다.  과거 왕이라는 단 한사람에 대한 우상숭배와 그를 통한 욕망의 매개는 새로운 시대의 평등성 앞에서 수많은 경쟁자에게 분유되면서 선망과 질투 그리고 증오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몰락한 귀족의 욕망의 매개자는 부르주아 그 자체가 된다.  새롭게 탄생한 지층의 신권력의 소유자인 상습계급을 통해 과거의 허영을 꿈꿔보지만 이는 결국 스스로의 파멸을 재촉할뿐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은 바로 저 두지층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주 강렬한 단절면에서 존재한다.  그곳을 살아가던 줄리앙 소렐은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람이다.  그는 작품 전체를 통해 크게 두가지 욕망을 꿈꾸게 되는바 첫째 소규모 부르주아를 향한 욕망과 둘째 귀족을 향한 욕망이다. 

대혁명 이후 몇번의 혁명을 더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싹터오르게 되는 점진적 평등의 발전은 수천 수만의 줄리앙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중 능력이 정말 뛰어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능력도 없으면서 그냥 무작정 파리로 달려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능력의 경중과 무관하게 그들이 가지는 욕망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 했을거라는 점이다.  그들의 욕망은 사용가치에 의한 욕망이 아니라 교환가치에 의한 욕망이다.  자신들의 경쟁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면서 욕망을 간접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수천 수만의 줄리앙의 욕망을 첫째로 매개하는 자는 바로 레날.  레날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적당히 부유하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살아가는 그는 전형적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줄리앙의 입장에선 욕망의 매개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레날과 줄리앙은 경쟁적 관계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레날은 초반엔 과격왕정복고주의자였지만 나중에 1827년 선거시기에 자유주의자로 변모하게 된다.  이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 바뀌었다는 상징이라기보다는 레날이 가지는 욕망의 상징성을 잘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 군주주의냐 자유주의냐 라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발르노.  이자와의 경쟁관계가 중요할 뿐이다.  즉 레날은 발르노를 매개로 한 욕망의 성취와 그 경쟁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레날과 발르노의 관계는 줄리앙과 레날의 관계와도 크게 다를게 없다고 판단된다.  줄리앙 역시 자신이 원하는 사용가치에 의한 삶보다는 상황과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과의 비교를 통한 교환가치의 크기가 더 중요하니 말이다.  그러니 줄리앙은 시대상황에 따라서 군인이 될 수도 있는것이고 성직자가 될수도 있는것 아니겠는가?

그후 줄리앙은 라몰 후작을 만나게 된다.  라몰후작은 왕정복고 시기의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귀족이다.  이 라몰후작 역시 재미있는 인물이다.  귀족이긴 한데 부르주아에게서 질투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실 과격왕당파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따지고보면 혁명 이후 영향력이 높아진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질투와 욕망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상승계급을 매개로 하여 어떤 대상을 욕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라몰 후작에게서는 부르주아에 대한 질투와 욕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심지어 평민인 줄리앙을 사위로 삼으려 하지않았던가?  결국 줄리앙의 두번째 욕망의 매개자는 라몰 후작이 된다.  라몰 후작을 통해 귀족 직전까지 나아갔던 줄리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앞서보았던것과 마찬가지로 경쟁자와의 비교를 통한 욕망의 해결과 그로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허영이다. 

이러한 줄리앙의 허영은 사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판단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줄리앙과 똑같다.  어떤 대상을 욕망하지만 스스로의 사용가치에 의한 욕망이라기 보단 타인에 의해 매개된 욕망에 불과하다.  저사람보단 잘나고 싶어서. 저사람한텐 이기고 싶어서.  이것이야 말로 현대인의 기본사고방식 아니던가?  결국 이러한 욕망의 매개상태와 욕망의 발생과정에 대한 고찰은 노예상태에 빠진지도 모른채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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