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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도럼(2009), 안과 바깥 그리고 내안의 투쟁 본문

영 화/00's 영화

팬도럼(2009), 안과 바깥 그리고 내안의 투쟁

유쾌한 인문학 2010. 1. 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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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orum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좀비영화이다.  그냥 이유없이 좀비가 사랑스럽다고나 할까?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건 SF영화.  SF 영화안에서 좀비 비슷한 괴물이 나와주면 금상첨화이다.  팬도럼은 이러한 나의 스타일을 정확히 반영해주신 아주 만족스러운 영화이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좀더 괴물들을 좀비스럽게 만들고 사람을 잡아먹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용은 대단히 단순하다.  새로운 행성을 향해 떠나가는 우주선이 있으며 지구는 여행과정에서 이미 멸망해버렸고 우주선에 생존해있는 유일한 인간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의 습격을 받아 계속 죽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Copyright (c) Impac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안과 바깥
우주선이라는 공간은 바깥의 우주와 대립되는 공간이다.  우주가 바깥이라면 우주선은 안의 공간이 될 것이다.  영화 내에서 모든 대립과 투쟁은 우주선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재미있는건 분명히 그들에게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가 우주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임무가 주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멸망했다는 소식하나에 팬도럼 현상을 일으켜 정신병적 분열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Copyright (c) Impac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작은 공간속에 갇힌 인간이라고나 할까.  사실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인간 개개인이나 더 크게는 사회전체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의 분열증상은 극중에서는 중령(위의 스샷)이 잘 표현하고있다.  자신 내부에 일어나는 욕망의 억압과 발현 사이에서의 투쟁.  이러한 투쟁은 중령의 대사중 '도덕을 버리면 진정한 자유를 얻으며 왕이 될 수 있다' 따위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중령이 원하는 것은 억압된 욕망의 발현인 것인바 그것은 일종의 소아기적 상상의 바램이다.  그속에선 자신이 왕이 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건 뭐든지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을 꿈꾸며 안과 바깥을 가로지르는 경계를 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어떠한가?  이는 극중에서 괴물과 인간의 대립상으로 표현된다.  흔히 하는 말로 전체주의의 주된 원인은 사회의 소아기적 상상의 바램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치를 보면 허황된 아리아민족의 찬란한 국가를 위해 그런 말도안되는 대학살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여기에 사회 전체가 빠져들어 그허황된 꿈을 정말 이룰 수 있는것인 마냥 집단적 광기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가상의 적의 창출이다.  나치입장에선 그것이 유대인이나 집시가 되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속에서 어떤 대목적을 잃어버린다는것 아니겠는가.  왜 인간이 기술문명을 발전시켰던가?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더 나은삶을 위해서 아니었던가?  그럼 저게 인간의 위대한 이성이 추구했던 더 나은 삶인가? 
극중으로 돌아가보자.  그들의 목적은 새로운 별에 도착하여 우주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잊어버린채 괴물과 인간의 무한 투쟁만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투쟁은 대단히 절망적인바 인간도 괴물도 둘다 몰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괴물이 나치냐 유대인이냐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다.  중요한건 우주선 내부사회의 투쟁과정에서 잃어버린 진정한 목적.  바로 바깥으로의 나아감이다.  


Copyright (c) Impac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미
 존재하는 목적지
영화가 종말에 이르면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사실 우주선은 원래 목표했던 행성에 도착해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른채 안에서 지지고 볶고 그 난리를 친것이다. 
혹자는 이런말을 할 수도 있을것 같다.  그럼  무조건 억압시키고 바깥으로 나가라는 말이냐?  

그런건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까.  바깥으로 나아간다 한들 나가는 그 순간 또 다른 바깥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필연이다.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그건 다시금 안이 되고 그 안에서 또다른 반이 나타날테니깐.  중요한 것은 안에서의 투쟁은 결국 하나라는 것 아니겠는가.  나의 내면에서 어떠한 투쟁이 일어나고 어떠한 상처가 발생하던 결국 그건 결국 나 그리고 하나의 사회의 몫이라는 점이다.  끝임 없이 반복되는 깨어나감.  바로 그것이 중요한게 아닌가 생각된다.

한줄요약 : 목적지에는 이미 도착해있다.  다만 내면의 투쟁으로 인해 안에 갇힌채 밖으로 나가질 못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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