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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를 찾아서(2003), 니모의 성장과 지느러미의 변화 본문

영 화/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2003), 니모의 성장과 지느러미의 변화

유쾌한 인문학 2010. 1. 1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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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존라세터 감독이후 두명의 새로운 감독으로 피트 닥터와 앤드류 스탠튼이 지목되고 피트 닥터가 먼저 몬스터 주식회사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로부터 2년후 앤드류 스탠튼 역시 기가막힌 작품을 상상해내니 그것이 바로 픽사의 5번째 작품인 니모를 찾아서이다.  2003년도에 공개된 이 작품은 앤드류가 자신이 아들이 태어나던 해에 찾아갔었던 수족관의 기억을 떠올려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일단 물고기이지만 그뒤에 숨어있는 진정한 주인공은 바다라고 볼 수 있다.  물이라고 하는 것을 CG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있는 배경을 하나하나 다르게 설정하는 작업은 실로 어마어마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니모를 찾아서의 배경은 바다 전체이니 같은 배경을 사용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른바 노가다 작업의 대서사시가 열린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작품의 제일 초기 장면인 해초속 여러씬에서 화려한 색감의 대 향연을 볼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기본 골격은 니모와 니모의 아버지 말린을 주축으로 하는 대립상.  그리고 어항과 바다를 들 수 있다.  즉 니모와 말린은 각각 어떤부분의 결핍을 안은채 살아가는 존재로서 작은 어항과 상징적으로 연결되고 그후 두 부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금 집으로 돌아갔을때의 그들은 바다와 상징적으로 연결된다. 




과잉보호아버지 말린
니모의 아버지 말린은 자신의 부인과 알들 대부분을 잃은 이후 지극히 조심스러운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위험이 도사리는 큰바다를 무서워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인 니모에 대한 과잉보호가 도를 넘어설 정도이다.  결국 니모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인간의 보트 옆으로 다가가다 인간에게 잡혀 머나먼 시드니로 가게 된다.

말린은 뭐라고 해야 할까.  부인과 수많은 자식을 잃은 상처로 인해 스스로를 작은 어항속에 가둬버린 인물로서 그가 살아가는 작은 수초가 일종의 어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고 더 작게는 자신과 아들의 둘만으로 세상을 한정지어버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웃들과 소통가능성이 극히 줄어든다.  극중에선 니모와 말린을 보고 광대물고기라고 부르는데 말린은 자신의 주특기인 유머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정도로 지극히 소심하고 움츠러든 성격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과거 자신의 상실의 그 순간에서 멈춰버린 물고기이다.

사실 이러한 말린의 성격은 픽사의 작품 전반에서 나타난다.  업에서는 할아버지,  카에서는 시골마을의 박사 자동차 등 주요 캐릭터들은 대부분 말린과 같이 자신이 입은 상처를 시작으로 스스로를 고정시켜버리니 말이다.  이러한 캐릭터상을 픽사가 자주 선보이는 이유는 픽사 작품이 전반적으로 추구하는 성장애니메이션을 만족시키기에 적합한 캐릭터상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말린에게 있어 니모의 상실은 그나마 자신을 지탱하던 세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 자기 스스로를 가둬버린 어항이 깨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제 더이상 거칠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는 과감하게 아들을 찾아 대양으로 나가게된다.  이러한 극의 전개는 말린이 가지고 있는 상실의 기억을 상실 그 자체를 통해 회복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즉 상실로 인한 결핍으로 인해 갇힌 사람이 또다른 상실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그 상실을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하는 과정에서 결핍을 충족시키게 되는 것이다.





반쪽지느러미 니모와 지느러미를 통한 신체적 교감
니모는 지느러미 한쪽이 부실하다.  이를 두고 장애라는 표현을 하면서 장애아를 의미한다고도 하지만 신체적 결핍에 한정하기보다는 니모가 가지는 전반적 결핍의 상징으로 보는것이 옳다.  니모는 어떤아이일까?  일단 물고기의 세계에서는 형제가 아주 많아보인다.  그런데 자신은 태어나보니 엄마도 없고 형제도 없는 그야말로 홀로 남겨진 존재라고나 할까.  거기에 아버지의 지나친 과보호로 인해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심지어 학교에 가는것 마저도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으로 트러블이 생기게 된다.

결국 니모가 가지는 결핍은 스스로 형성했다기보다는 타자에 의해서 강요된 결핍이라 볼 수 있다.  니모는 항상 이러한 결핍을 스스로의 힘과 스스로 원하는 바로 채우기를 원하지만 타자에 의해서 항상 억압된다.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이정도의 심각한 억압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아버지와 니모 둘만
의 세상에서 완벽하게 머물기를 원하는 아버지 밑에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나 할까?  

아무튼 니모는 급기야 반항을 하게 되고 그 결과는 인간에게 사로 잡힘이다.  대위기를 겪는 것이다.  니모에게 있어 이러한 경험은 일종의 통과의례적 성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사로잡힌후 새로운 물고기를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다양한 삶에 대해서 알아가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알아간다.  물론 아버지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것은 말할것도 없다. 


이러한 통과의례의 결과 니모의 반쪽지느러미의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과거의 니모가 가졌던 반쪽지느러미는 단지 헤엄치기에 불편한 지느러미로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억압과 그로인한 불만족의 상징적 표현이었다면 통과의례 이후 지느러미는 아버지와의 소통의 수단으로서 바뀌게 된다.  결국 니모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결핍을 자신에게 닥친 대위기의 상황과 아버지의 부재라는 또 다른 상실의 경험을 통해 그 결핍을 새롭게 채워나가게 된다.  이른바 지느러미의 속에서 성으로의 변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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