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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오브 데드(2005), 좀비와 현대인의 닮은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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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오브 데드(2005), 좀비와 현대인의 닮은꼴

유쾌한 인문학 2010. 3. 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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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오브 데드(
Land of the Dead)
조지 로메로 감독이 시체들의 날 이후로 20년만에 내놓은 좀비작품이다.  오랜만에 좀비물로 돌아왔지만 무슨 특별한 자금으로 도배를 한다던지 그런 느낌은 전혀 없다.  역시 B급의 정서를 그대로 함유한채 좀더 확장된 고어물의 성격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조지 로메로 감독 특유의 좀비를 통한 비판의식은 여전히 살아있다.  

조리 로메로 감독은 이미 시체들의 날에서 학습하는 좀비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바 있다.  좀비를 가르치고 길들인다는 설정인데 이 작품은 여기에서 진일보하여 스스로 학습하고 집단을 이루는 좀비들이 나타나게 된다.  의사소통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며 우두머리가 존재하고 그를 통해 집단행동을 하여 스스로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하는 일련의 행동을 보여주게 되고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적 이야기이다.  뭐 사실 좀비 영화라는게 이야기가 별거 있겠는가? 장르 영화이기 때문에 구문론적 일관성 즉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건 장르 영화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이다.  일관된 공통성을 유지해야 장르성이 유지가 되는 것이고 바로 그것에서 장르 팬들이 만족을 얻으니 말이다.



Copyright (c)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세가지 공간과 두가지 대립
이 작품이 보여주는 특이점이라면 이전 작품인 시체들의 날에서 드러난 공간이라는 측면과 그 공간속에서의 계급성을 더욱 확장시켜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선 공간은 크게 3분화된다.  섬안에 도시가 존재하는데 그 도시는 소위 말하는 사회의 부유층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 섬에서 쇼핑도 하고 외식도 즐기면서 좀비가 생기기 이전의 문명화된 삶을 누리는 것이다. 

두번째 공간은 저 섬을 둘러싼 슬럼가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이지만 부유층은 아니기에 저 섬에 들어갈 수는 없고 섬의 도시가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구해와서 제시하여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즉 슬럼가는 다시 좀비들이 살아가는 바깥지역과 분리되어 전기 펜스로 보호가 되고 있는데 슬럼가의 사람들은 전기 펜스 바깥으로 나가 물품들을 구해오고 섬안의 도시안으로 투입시키는 식이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섬안의 경비의 일을 겸하기도 한다.  뭐가됐든 슬럼가의 사람들은 도시안의 사람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열심히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세번째 공간은 슬럼가 바깥의 공간.  즉 좀비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곳은 문명과는 아주 거리가 먼 곳으로 인간과도 철저하게 구분되어 대립하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좀비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해가지만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침투하여 자신들을 살해하니 급기야 분노를 하게 되고 이에 그들은 무리지어 인간들의 공간으로 침입해들어가 그곳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극중에선 크게 두가지 대립양상이 나타나는데 인간과 좀비와의 대립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대립이다.  인간사이에서의 대립은 최상위 계층과 중간계층 사이에서 나타나는 대립 그리고 중간계층 내부에서 나타나는 대립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극중 주인공인 콜로(존 레귀자모)는 도시안에서 살기 위해 그 도시안의 최고 권력자의 어려운 일들을 주로 해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버림 받게 되고 이에 둘은 대립하게 되는바 이 지점에서 최상위 계층과 중간계층의 대립이 드러나게 된다.  한편 라일리(사이먼 베이커)는 콜로와 같은 중간계층의 사람이지만 그는 콜로와 다시 대립하게 된다.  약간의 의견의 차이인데 결국 이 영화는 각각의 대립들이 표면화되는 것이 스토리의 주를 이루게 된다.  

아무튼 이미 많은 분들은 위에서 설명한 3가지 공간의 설명을 통해 조지 로메로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다 알았으리라 믿는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계급적 측면.  즉 상부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하부구조의 희생 그리고 그것을 넘어 상부구조에 협력하지 않는 인간(좀비)들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말살에 대한 비판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Copyright (c)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마무리
좀비의 거장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오랜만의 좀비 복귀작이지만 아마 크게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을거라 생각된다.  왜냐면 이미 관객들은 이 작품 이전에 28일 후와 새벽의 저주를 통해 아주 자극적이 빠르며 날렵한 좀비들을 본 상황에서 여전히 뛰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좀비에게서 무슨 매력을 느끼겠는가? 

하지만 느린 좀비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비판적 요소를 가지게 된다는 점을 항상 잊어서는 안되겠다.  빠른 좀비는 인간보다 강한 존재이기에 그 위치적 역전현상이 생겨난다.  이래선 계급 모순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게 된다.  이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좀비는 느리기에 인간보다 약한 존재이다.  그들이 어기적 거리면서 걸어오는 사이 이미 인간은 총을 쏴서 해결을 해버리니 말이다.  인간보다 약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좀비.  그러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좀비.  하지만 그들이 뭉쳤을땐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기도 하는 좀비.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좀비들은 바로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일반시민들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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