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관리 메뉴

★ image or real

아이 로봇(2004), 로봇의 자유의지와 소통가능성 본문

영 화/00's 영화

아이 로봇(2004), 로봇의 자유의지와 소통가능성

유쾌한 인문학 2010. 4. 26. 18:18
반응형





아이, 로봇(I, Robot)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4번째 작품이다.  호주출신 감독인 그의 첫번재 작품인 크로우를 통해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만족시킨 그는 다크시티라는 작품을 통해 그의 작품성에 대해 평론가들에게 확신을 주게 된다.  그 이후 그는 헐리웃으로 넘어가게 되고 대자본과 만나게 되면서 나오는 작품이 바로 아이 로봇이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품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SF영화인데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인 윌 스미스가 나오니 나로서는 최상의 만족감을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도 아주 흥미롭다.  로봇3원칙  즉 법칙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법칙 2. 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법칙 3. 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라는 완전해 보이는 이 로봇을 제어하기 위한 법칙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즉 인간을 보호해야 하지만 인간이 아닌 인류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인간의 가장 큰 위협은 인간이기에 인간을 로봇이 제어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컴퓨터가 단어를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해석을 한다는것은 결국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하나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뭐 실제로 극중 주인공 로봇은 완벽한 자유의지를 보여주니 말이다.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로봇이라는게 상당히 재미있는 측면이며, 이는 인공지능과 인공생명이라는 측면으로 바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Copyright (c) Twentie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와 인공생명
인공지능과 인공생명이라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흔히 인공지능이라고하는 것의 시발점은 자기-조직화라는 이론에서 비롯된다.  물리학적 실체 또는 생물학적 실체를 불문하고 내부작용원인에 따라서 일정패턴을 구성하는 과정과 결과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내부 구성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하나의 망을 형성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조직화에서 핵심은 자립적 개체와 이들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질서혹은 패턴이다.  이를 잘확인시켜준 예로 베나르 불안정성의 물리현상을 들 수 있다.  물을 천천히 가열하면 일종의 열흐름을 나타내지만 아래위의 온도차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불안정한 상태고 변하고 그때 벌집모양의 육각형이 드러나게 된다.  흔히 카오스 상태에서 등장하는 육각형 모양과 동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기조직화는 물리학 생물학을 불문하기에 인간에게도 적용이 되는 부분이다.  즉 인간은 엄청나게 많은 단일 세포들의 조합인바 이 세포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개체성을 가지게 되고 인간의 내부구성요소인 세포들의 상호작용으로 하나의 조직화 능력을 가지게 되어 인간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체에서의 자기조직화현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마투라나-바렐라 두학자이다.  칠레의 학자로 그들의 주저는 대부분 번역되어있는 상태이다.  혹시 인식의 나무 또는 앎의 나무라는 책을 아시는분 계시는지 모르겠다.  교육학 하신분들은 구성주의 교육학이라는 말을 아실테고 그것의 시발점이 바로 이 생물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생명체에서의 최소단위인 세포의 자기조직화를 '자기 스스로 제작한다'는 의미에서 오토포이에시스라 개념짓고 수학적 모델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실험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루어지게 되는바 그 실험에서 안정적인 오토포이에시스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실험이 재미있는 것은 컴퓨터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생명체의 자기조직화 즉 오토포이에시스를 컴퓨터로 실현했다는 것은 컴퓨터 역시 오토포이에시스로 볼 수 있다는 역해석이 가능해진다.  만약 생명체의 자기조직화를 더욱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컴퓨터가 존재한다면 그자체를 생명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과 인공생명의 시발점이다.  
이러한 연구는 그 후 사이버네틱스 연구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되는바 그들의 초기 연구목적은 기계와 생명의 공통된 소통원리에 대한 연구였으나 그 후 그들의 연구는 인공지능과 인공생명으로 나뉘게 된다. 

그럼 아이로봇에 나오는 로봇들은 생명체로 볼 수 있을까?  일단 생명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생명은 크게 두가지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생물체.  즉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화된 물질로서의 생명과 가능한 생명으로서 물질의 조직화로서의 생명으로 이른바 오토포이에시스의 특성을 가지는 생명체를 말한다.  생명체의 가장 최소단위인 세포의 자기조직화 특성을 생명의 주요 본질로 본다면 기계나 컴퓨터에서 나타나는 자기조직화 현상 역시 생명으로 볼 수 있을것이고 그럼 아이 로봇의 주인공 로봇은 생명체가 된다. 

그리고 자기조직화로서의 '물질의
조직화' 생명개념을 가지게 된다면 영혼이라는것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흔히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 의문인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며 인간이 이러한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연유에 대해서 마땅한 설명할 방도가 없던 시절 영혼이라는 설정과 신이라는 설정을 통해 설명하곤 했었지만 자기조직화라는 개념하에서는 인간의 사유 역시 뇌의 세포가 보여주는 상호작용의 결과일뿐이고 결국 인간의 머리라는 것은 거대한 정보처리시스템에 불과하게 된다.  

이말의 의미는 뇌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조직화 정보처리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한 개인의 뇌를 컴퓨터로 옮기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즉 프로그램화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 영생의 비밀이 풀리게 된다.  육신은 그냥 하나의 출력장치로서의 세포들의 조합일뿐이니 말이다.  결국 다른 기계의 몸을 빌린다거나 아니면 몸은 없는 정신만 있는 상태로 존재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지는 링크개념이다. 


로봇과 인간의 소통 가능성
이렇게 본다면 아이로봇에서 주인공인 윌 스미스와 로봇 주인공이 보여주는 소통은 인간과 인간사이에 나타나는 소통과 크게 다를바 없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사실 인간이나 인공지능 로봇이나 결국 나타나는 매커니즘은 동일하니 로봇과 인간을 구별짓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인간도 유기체의 로봇과 뭐가 다를까.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바로 로봇들의 반란이 일어났을때의 장면이다.  윌스미스는 진실을 알기 위해 폐기된 로봇들이 모여 살고 있는 컨테이너 배후지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로봇들에게 쫓기는 윌 스미스를 구하기 위해 덜 발달된 로봇들이 반란 로봇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로봇들이 이렇게 갈려지는 이유는 로봇을 이루고 있는 자기조직 시스템의 극세밀화가 이루어졌기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세포와 거의 유사한 형태로 극세밀화되어 디자인된 로봇.  그 세밀화된 시스템에서 자기조직이 이루어지고 그로인해 자유의지가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을 영화속에 자살한 박사가 예측한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박사는 또 다른 자유의지를 가진 극중 주인공인 로봇을 만들어 그에게 인간의 감정을 가르치려고 한다.  서로서로 이해를 높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로봇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말이다.

아무튼 극중에서 로봇 주인공과 윌 스미스 사이에서는 아주 수준 높은 소통이 이루어진다.  주인공 로봇은 사실상 인간의 그것을 교육받은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로봇과의 관계는 사실상 불분명하다고 할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로봇들의 반란을 막아내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주인공 로봇은 모든 로봇들을 이끄는 통치자와 같은 지위에 놓인게 된다.  결국 영화는 제일 마지막 장면을 통해 무거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공존이 가능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말이다.


Copyright (c) Twentie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마무리
문학이든 영화이든 모든 형태의 SF 작품들은 과학에 큰 빚을 지게 된다.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부 현대 과학의 성과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이 보여주는 성과는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교양과학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지만 말이다.  최근에 개봉한 아바타 영화 역시 막연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가능성에 상상력을 약간 더한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러한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은 교양수준의 척도라고 볼 수 있다.  수준 높은 독서와 그에서 파생되는 교양수준에서 온갖 상상력들이 창조되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생성되는 상상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런 상상력은 큰 가치를 가지기도 힘들고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극심한 상상력의 궁핍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가지는 총체적 교양수준의 질 낮음때문이고 이러한 질낮음은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휘감아 돌고 있는 생산력의 수준낮음때문이다.  즉 노동시간대비 극히 떨어지는 생산력이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다른 활동은 할 수 없게 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사실을 위정자들은 모르는 것 같으니 실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