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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9(2002), 냉전과 잠수함 내부의 잠수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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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9(2002), 냉전과 잠수함 내부의 잠수함

유쾌한 인문학 2010. 5. 11.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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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9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이다.  비글로우 감독은 아무래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 부인이여서 그런지 엉뚱한 곳에서 명성을 많이 쌓아올려버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세계는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냉전당시의 소련의 핵잠수함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당시에 핵잠수함과 관련된 영화들이 꽤나 많이 나왔던걸로 기억되는데 제목들이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뚜렷하게 나의 뇌리속에 남아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빌려봤었던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의 위치까지 생각나니 말이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임무를 띄고 미국 동부 해안으로 나아가던 소련의 핵잠수함에 냉각시설이 고장나게 된다.  이에 이를 고치기 위해 7명이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 수리를 하게 되고 그들은 전원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첫번째 수리는 실패하게 되고 잠수함 전체에 방사능이 노출되어 모든 선원들이 위기에 처해진 상황이다.  그때 잠수함은 미국의 구축함에게 발견되게 되고 모스크바에서는 이 잠수함의 배신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급기야 선상 반란이 일어날 조짐까지 보이게 된다. 


냉전과 잠수함
냉전이 끝난지 몇년이나 지났던가?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이지만 냉전은 또다른 형태로 변질되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들어 두각을 드러내는 과거의 영광의 재현을 위한 러시아의 패권주의도 눈에 띄일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고 냉전 종료후의 유일 강대국이자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보여주는 패권주의 역시 그 심각성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형태만 바뀌었을뿐 패권주의와 그 충돌이라는 양상은 크게 달라진바 없다고나 할까.  이는 역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잠수함이라는 함정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잠수함을 제일 처음 개발한 국가가 독일이었던가?  이 잠수함이라는 함정이 가지는 특징이라면 바닷속에서 항해하며 몰래 다가가 공격을 하는 무기라는 측면일 것이다.  바다속에서 완벽하게 차단된채 완전한 자급적 체계를 이루어야 하고 해면의 그 어떤 배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  절대적인 비밀과 외부와의 완벽한 차단성 그리고 국가 또는 이데올로기를 향한 절대적 복종.  이것이야 말로 잠수함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자 잠수함이라는 개체가 보여줄 수 있는 상징성 그 자체이다. 

이러한 잠수함을 가지고 냉전을 그려내는 영화적 시도는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냉전 당시의 동서 양진영이 보유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잠수함과 똑같은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잠수함이 기계적 외피를 이용하여 자신을 둘러싼 바다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그속에서 살아숨쉬는 완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섬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거대한 상징으로 등장하게 된다면 냉전 당시의 두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주위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하나의 섬을 이루게 된다. 

인간의 삶을 설명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윤택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서 인간을 구속하게 되고 그 구속성은 대단히 폐쇄적인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우리는 바다와 잠수함의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잠수함 너머에 존재하는 바다 전체가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로 이루어져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바다는 그 어떤 성향도 나타내지 않는 텅빈 공간일뿐이다.  다만 인간이 그 텅빈 공간에서 하나의 공간을 창출해내 그 속에서 자신을 가둔채 살아가는 것에 다름아니다.  마치 잠수함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진실을 말하려 들지 않는다.  이 잠수함 너머의 공간은 오직 적대적 이데올로기로 가득찬 그들이 우리를 포위한채 우리를 죽이려든다고 말할뿐이다.  잠수함이 가지고 있는 외피라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철저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단순한 도식은 잠수함 내부의 사람들을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인간으로 길러내게 되고 그러한 길러진 인간들로 잠수함이 채워지면서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살아숨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진실은 잠수함 너머의 공간은 그냥 텅빈 공간일 뿐이다.  그곳에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색칠을 한건 인간 그 자체일뿐.  그곳은 그 어떤 색깔도 존재하지 않는 무일뿐이다.  텅빈 공간에 어떤 색깔을 칠하던 결국 인간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불러온 결과는 대단히 참혹할따름이다. 

영화로 돌아가보자.  함장은 현재 큰 위기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다.  나토의 영역내에서 잠수함은 고장이 나버렸고 모스크바와의 연락도 두절된 상황이다.  방사능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에서 나토의 구축함에게 발견까지 되버린 상황이다.  원자로를 고치지 못해 그대로 폭발해버린다면 구축함에게 영향을 갈 것이고 그렇다면 나토는 바로 소련에게 보복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선원들이 죽어가는 상황속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선원들의 안전 사이에서 잠수함의 지휘부들은 갈등한다.  상황이 극한으로 몰려 결국 선원들을 살리고 자폭을 선택하려는 순간.  러시아의 잠수함이 그들을 발견하여 구출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함장이 감당해야할 선택적 상황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고 마지막엔 선원들을 미국 구축함에 넘긴채 자폭하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대단히 감동적일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잠수함 내부에서의 선택에 불과하다.  즉 소비에트라고 하는 거대한 잠수함 속에서 그 잠수함이 요구하는 최대치의 한도내에서 내려진 선택이라는 점이다.  더 재미있는건 잠수함 내에는 또 다른 잠수함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당의 지도부는 이러한 함장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고 방사능 노출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를 반역자로 몰아가게 된다.  잠수함 내부의 또 다른 잠수함이 존재함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결국 잠수함 내의 수많은 잠수함들이 겹겹으로 둘러쌓여져 있다는 것이고 내부의 잠수함은 자신의 외부의 잠수함을 결단코 이해하려들지 않는다.  잠수함의 목적은 그 잠수함의 생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비에트라는 잠수함 내부에 존재하던 또 다른 내부 잠수함인 당의 지도부는 자신들의 내부 잠수함의 생존을 위해 함장을 이해할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명백한 증거가 존재함에도 말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측면을 정확히 보여주게 된다.  이는 비단 소비에트뿐만 아니라 나토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데올로기던 겹겹이 쌓여진 내부 잠수함들의 연속일테니 말이다.


마무리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화이다.  일단 뭐 잠수함을 이용한 냉전 영화이니 재미가 있을수 밖에 없고 나 개인적으로는 잠수함이라는 설정 그 자체가 아주 흥미롭게 다가오게 된다.  잠수함이라는 군함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유의미성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니 말이다.  사실 이 영화는 한동안 기억속에서 사라져있던 영화인데 케이블 티비에서 우연히 하던 영화를 보게 되어 기억속으로 회귀하게 된 영화이다.  아직 안보신분들은 한번 보시라고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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