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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라이언즈(2007), 자본우위의 자본주의와 냉소주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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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라이언즈(2007), 자본우위의 자본주의와 냉소주의

유쾌한 인문학 2010. 6. 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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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라이언즈(Lions for Lambs)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가장 최신작이다.  사실 이런 영화 있는지도 몰랐는데 티비에서 하는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일요일이 되면 멍하니 앉아서 케이블 티비의 영화들을 보곤하는데 가끔 이렇게 못본 영화중에 수작을 만나게 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감독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면 선댄스 영화제를 창립한 사람이고 감독 겸 유명한 배우이다.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들은 내일을 향해 쏴라, 아웃 오브 아프리카, 스팅 등등 온갖 영화들이 다튀어나온다.  하지만 역시 선댄스 영화제에서 힘이 확실리는건 부정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 국제영화제를 창시한 사람.  물론 우리나라는 아카데미에만 하악하악 거리며 거기에서 상받았다고 하면 우왕 굿을 외치면서 아무 생각없이 소비해버리지만 말이다. 

어쨌든 영화는 크게 3가지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제시된다.  첫째는 메릴과 탐이 기자와 상원의원의 관계로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는 이야기이며 두번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두 병사에 대한 이야기  세번째는 아주 뛰어난 두뇌를 타고 났지만 냉소주의에 빠져 모든것을 놔버리고 있는 학생과 그를 설득하는 교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야기와 세번째 이야기는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총세가지가 제시되지만 사실상 두가지 이야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현상황을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과 아래에서 올려다본 시점이 바로 그것이다.

대단히 정치적인 영화인데 그 화법이 아주 직설적이다.  이건 뭐 영화라고 보기에도 힘들정도로 너무 직설적이라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보통 영화라는 것은 아무리 독립영화라도 대자본이 투입되는 것이기에 이익이라는 것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더라도 이는 대부분 은유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영화들은 자신에게 자본을 투자한 자본가들의 정치성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고 그것에 충성하는 은유만을 가지고 있을뿐이다.  그게 바로 헐리웃 영화의 특징이다.  뭐 이해못하는 사람은 영화는 영화일뿐이라고 말하며 영원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치와 언론 그 치밀한 장삿속
먼저 첫번째 이야기를 해보자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실패와 이라크 전쟁의 위기속에서 어빙이라는 상원의원(톰 크루즈 분)이 유명한 기자(메릴 스트립 분)를 불러 엄청난 정보를 주겠다면서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새로운 작전의 개시와 그것으로 인해 위대한 승리를 이끌겠다.  현재의 분열된 미국을 단결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승리뿐이다.  물론 그걸 기획한 사람은 자신이고 말이다.  기자는 그것의 진의를 단숨에 간파하지만 진실과 장사속에서 갈등한다.  

언론이 행하는 장사라.  많은 사람들은 언론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언론은 진실이라는 포장을 한 장사를 하고 있을뿐이다.  그리고 그 장사의 주된 소스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여러가지 정보소스가 존재하겠지만 최대 최고의 소스원천은 바로 정부기관이다.  정부기관에서 던져주는 정보소스는 많은 관심을 가져올 수 밖에 없고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서 회사의 운명이 바뀌기도 하니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걸 두고 썩어빠진 언론하면서 욕을 하는게 옳은걸까?  뭐 그렇게 허공에 외치면 속은 쉬원해질지 모르겠지만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허무한 외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경제라고 하는 것은 크게 세가지 발전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대ㆍ중세사회에서는 경제는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공적인 영역과 정확히 구분된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 사회적인 것이라는게 발생하게 되는바 이는 사적인 것의 공적인 것에의 침투를 뜻한다.  즉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회가 거대해지고 재산 -> 부-> 자본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확대되면서 경제적인 문제는 더이상 사적인 영역에서 머물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것들이 바로 사회적인 문제이다. 

경제적인 문제라는 게 사실 사적인 문제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대중의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생존과 관련된 부분이니 말이다.  결국 사회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이 쏠리면서 공적인 부분이 억눌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서 사적인 영역이었던 경제적 문제는 사회적인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본우위라고 하는 절대적 존재로 나아가게 된다.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경제는 정치권력이 어찌 저찌 해볼 수 있는 존재이지만 자본우위로서의 경제는 사실상 정치권력이 어찌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를 두고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저러한 자본우위 현상과 더불어 확인해야 할 점은 근대적 이성의 폐단이다.  이성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객관적 이성과 주관적 이성이다.  객관적 이성은 객관적 현실에 내재하는 합목적적 이성과 그걸 파악하는 주체의 능력을 동시에 가리키는 용어이다.  객관적 이성을 지향하게 되면 수단보단 목적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럼 주관적 이성은 무엇인가?  주관적 이성이란 추론이나 영역 따위의 능력을 의미하는 개념어인바 주관적 이성은 목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목적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에만 관심을 가지는다. 

이는 데카르트의 코키토 이후 나타나게 된 현상으로 인간을 중심에 세우고 주체가 중심에서면서 자기 보존이나 자신의 유용성이나 이득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 이성의 지배를 받던 시절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나 도덕 등 다양한 중세적 가치관들이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되는데 여기에 주관적 이성이 전면화 되면서 계몽의 역할이 야만성을 줄이기는 커녕 야만성을 더 늘리는 웃기는 현상을 불러오게 된다.

주관적 이성은 수단에만 관심을 가진다.  무슨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정도냐면 노예제도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유용성이 입증 된다면 아주 합리적인 제도가 된다.  여성에 대한 탄압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유용하다면 역시 합리적이게 된다.  이는 자연파괴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 현재를 보자면 경기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건설로 운하를 파는게 유용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역시 합리적이게 된다.  이게 바로 도구적 이성이다.


중요한건 자본우위의 자본주의 하에서 저러한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회는 인간을 계량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에 매우 독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것이다.  방송에는 드라마도 있고 다큐도 있고 시사프로그램도 있고 음악방송도 있고 이런 저런 아주 다양한 형태의 방송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제공되는 저러한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들을 선택하여 시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왜 자본은 쓸데 없이 저런 다큐나 시사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만들어서 제시했을까?  골치 아픈거 그냥 처음부터 안만드는 방법도 있었는데.  공익성때문에?  단순히 공익성때문이라면 현재 저것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결국 원인은 아주 간단한다.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이유?  원하는 사람이 줄기 때문이다.  방송 자본의 목적은 모든 대중을 방송의 틀안에 가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드라마나 예능을 좋아하는건 아니지 않는가?  다큐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100분 토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제시되지 않으면 이들을 방송의 틀안에 가두어 둘 수가 없게 된다. 이게 바로 저런 공익성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생산되는 이유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냐?  우리는 다큐를 보면서 "난 대중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았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공익성을 가진 프로그램도 대중문화라고 하는 거대한 틀 아래에 대중을 가두기 위한 자본이 생산한 하나의 표준화 도구일뿐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고급문화니 저급문화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형식적 구분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둘다 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들이니깐.  우리는 자본우위라는 자본주의 큐브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영화로 돌아가보자면 기자는 엄청난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이는 단독이기에 돈이 되는 정보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만 정보를 흘리는 의도 역시 쉽게 간파된다.  상원의원이 자신에게 이 정보를 흘리는 이유는 백악관으로 가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활용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원의원이 던지는 정보가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의도가 불순할뿐이라는 것이고 그가 행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작전도 대충 이루어진 것이라는것 정도랄까.  사실 의원에게 있어 어떤 결말이 이끌어질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건 이 정보가 영향력 있는 기자에 의해 기사화되고 티비에 일순간 나간뒤 자신의 이름이 국민들에게 각인되는 것이다.  즉 자신을 선전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기사화되어 티비에 나가는 그 순간 그 결말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국민이 관심있는 것은 유명한 헐리웃 스타가 누구와 사귀고 누구와 헤어졌는지 이것이 궁금할뿐이다.  즉 전쟁에서 새로운 작전이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돈이 되지만 어떠한 결론이 나왔고 그로 인해 어떠한 국제 정세에 변화가 있을것인가라는 골치아픈 문제는 돈이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두고 언론 욕해바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자본우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까놓고 말해서 상원의원이 던져주는 정보가 거짓된것도 아닌데다가 자본은 저것이 돈이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역시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언론의 입장에서 저걸 수행할 수 밖에 없는거 아니겠는가?  이건 자본이 나쁘고 언론이 나쁘다 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이 가지고 있는 아주 순수한 핵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방법도 의외로 아주 간단하게 도출된다.  대중이 스스로 선택하는 소비성향을 바꾸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문제는 그게 안되는게 문제인거지.




젊은 학생들의 냉소주의
영화가 제시하는 두번째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눠 바라볼 수 있다.  학생들의 이야기인데 첫번째 부류는 흑인과 멕시칸으로 미국사회에서 아주 안좋은 환경에서 자라나 대학까지 진학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MBA나 로스쿨에 진학할 돈도 없고 그러다 어떤 수업을 통해 과감하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대충보니 참전하고 돌아오면 꽤나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듯하다.  두번째 부류의 학생들은 미국 중산층 백인들이다.  딱히 경제력에서 부족할 것이 없는 그들은 대학에서 소통이니 뭐니 하지만 이론은 이론에서 그칠뿐 그냥 적당히 MBA나 로스쿨에 진학하는게 목적이다. 

그리고 위의 스샷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뛰어난 두뇌를 소유한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지만 기막힌 냉소주의에 빠져들어 모든 것에 손을 놔버린 인물이다.  사실 이러한 냉소를 보고 역시 어메리칸 보이의 한계라면서 비웃을 필요 하나도 없다.  멀리 갈 필요 있나?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냉소도 저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데 말이다.  혹자는 우리의 오늘날 삶이 이렇게 팍팍한 것은 썩어빠진 권력의 문제라고 말하곤 하는데 과연 그럴까?

군대, 학교, 병원 등  이런 기관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이러한 제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교육하고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키는 곳인데 비슷한 방식으로 훈육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훈육의 궁극적 목적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훈육의 특징은 어떠한 절대권력이 존재하여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 관계의 그물망속의 내부권력관계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점이다. 

위계질서라는 특정한 감시시스템을 통해 행사되는 이러한 권력은 아주 기계적이면서 항구적이고 자신도 모르게 이 기계 시스템속에 우리 스스로가 속해있으면서 권력을 분유한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를 보자.  학교라는 장을 통해 각 개개인이 각 개개인에게 그사회에서 통용되는 어떤 룰을 스스로 주체가 되어 타인에게 강요함과 동시에 나 스스로 거기에 종속시키지 않는가??  사실 군대, 학교, 감옥, 병원 전부다 내가 해야할 행동을 나 스스로 종속시키고 또한 그와 동시에 타인에게 해야할 행동을 강요하는 장이되는 곳이다.  우리사회의 인간상이라는게 이런거다.  우연히 만들어진 사회시스템이라는 것에 의해 지배 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옭매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결국 현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의 주된 문제는 과거 권력관계의 부패에 원인이 있는것이 아니라 현재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행사되고 있는 우리들 스스로가 행하고 있는 권력관계가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수많은 냉소주의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권력관계가 되고 수많은 개인들 사이에 작용하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것은 위에서 강압적으로 만들어진 권력이 아니다.  스스로 생성해낸 창발적 권력이다.  안그런가? 

결국 이 문제는 처음 언급한 대중의 소비취향문제와 연결된다.  그리고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발견되게 된다.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이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원동력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마무리
아마 이 작품을 찍는데 있어서 초저예산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메릴 스트립과 탐 크루즈라는 대형배우를 사용한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띄는게 없다.  메릴과 탑은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만하다가 끝나버리고 아프가니스탄 전투씬도 미국의 어느 사막을 잘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게 되면 이런 말을 던지곤 한다.  "아 돈많이 벌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그런데 이게 참 웃긴 말이다.  돈이 많은데 이나라를 왜 떠나나?  돈 많으면 어느곳보다도 살기 좋은 곳이 바로 대한민국인데.  대한민국은 돈만 많으면 정말 뭐든지 다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당신이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줄 것 같은가?  돈 많으면 이나라를 떠날 이유도 없지만 더 정확히는 당신에게 돈 많이 벌 수 있게 해줄 기회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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