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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흐르는 사랑(2006), 생명수와 죽음에 관한 알레고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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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흐르는 사랑(2006), 생명수와 죽음에 관한 알레고리

유쾌한 인문학 2010. 8. 20.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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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흐르는 사랑(The Fountain)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3번째 영화이다.  이 영화 의외로 속아서 보신분들이 많을꺼 같기는한데 어떨련지.  일단 엄청난 욕을 먹고 있는 아주 희안하고 독특한 영화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번역된 제목도 문제고 홍보도 문제였다.  당시 나도 완전 낚여서 영화보았으니 말이다.  판의 미로하고 비슷한 꼴이 났다고 보면 될려나?  얼핏 보기엔 영화 자체가 대단히 형이상학적으로 보여서 난해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난해한 영화는 아니며 되려 정말 단순한 영화이다.  일단 스토리를 먼저 간단히 말해보겠다.

16세기 스페인, 충실한 기사 토마스(휴 잭맨)는 적으로부터 아름다운 여왕 이자벨(레이첼 와이즈)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운다. 여왕은 토마스에게 영생의 나무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토마스는 신비의 나무를 찾아 목숨을 건 여정을 시작한다.

21세기 어느 연구실, 의사 토미(휴 잭맨)는 첫눈이 내린다며 자신을 찾아온 아내, 이지(레이첼 와이즈)를 매몰차게 돌려보내면서 암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만 몰두한다. 토미가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바로 이지가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암환자이기 때문.

26세기 우주의 어느곳, 톰(휴 잭맨)은 천년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미스테리의 정체를 찾기 위해 생명의 나무와 함께 우주여행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기 위해 삶과 죽음, 영생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톰의 여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 출처 포털 다음 영화 -




액자와 알레고리의 만남
이 작품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주된 이유는 영화에서 제시되는 세가지 이야기가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과거까진 그래도 어찌 이해를 해보겠는데 미래라고 생각하게 되는 우주 한복판의 영상에서 나타나는 철학적인 이미지들로부터 혼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가 과거에 죽어 환생하여 현재에 다시 만나게 된 두 부부가 미래로 이어간다는 뭐 그런 내용일까?  절대 그런내용이 아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하나뿐이다.  즉 21세기 현재.  이 부분이 진짜 스토리라면 16세기 스페인 배경은 액자 구조의 이야기가 되며 26세기 미래의 우주 어느 곳이라는 것은 알레고리의 하나이다. 

일단 기본 이야기는 의사와 소설가 아내의 이야기인데 아내가 병에 걸려 죽게 된다.  남편은 아내가 죽기 직전에 신약을 발견하게 되지만 이미 그녀는 떠난 시점이다.  그러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남기는 말이 쓰다만 소설을 완성시켜 달라고 한다.  여기서 소설의 이야기는 16세기 스페인의 이야기로서 액자 형태로 제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미래의 상황은 무엇일까?  저건 실제 하는 현실이 아니라 주인공 의사의 머리속에서 진행되는 어떠한 생각 또는 영화의 전반적 주제를 알레고리로 형상화하여 제시하는 것이다.  

알레고리란  두가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나 이미지를 말하게 된다.  겉으로 들어나는 의미와 숨겨진 의미가 있으며 진짜 하고자 하는 의미는 숨겨진 것에서 발생하게 된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본다면 겉으로 보기엔 그냥 왠 서있는 여자의 동상 정도겠지만 그것은 정의의 상 또는 자유의 상이라는 숨겨진 의미가 있게 되고 이것이 바로 알레고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알레고리는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우화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솝 우화 같은거 말이다.  이러한 다르게 말하기로서의 우화가 쓰인 이유는 중세 기독교 교리와 그 이전의 그리스 신화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양자가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알레고리 뿐이었다.  

그러다 낭만주의에 이르러 알레고리는 상징과 대비를 통해 비판받게 된다.  즉 알레고리는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해석원리로 작동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단어나 문장에만 국한되는 수사법으로 전락함으로써 그 기능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상징과 단적으로 비교를 해보자면 낭만주의 시대 당시 알레고리는 대상과 의미의 관계가 우연적이고 자의적이기에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될 수 없지만, 상징은 대상과 의미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차이점이 있기에 상징이 더 우월하다고 칭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벤야민에 이르러 다시금 뒤집혀 알레고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최근에는 폴 드만에 의해서 더욱 주목받게 된다.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의 언어이론과 결합되어 진행되므로 여기서 언급하기는 좀 무리가 있겠다.




생명수와 죽음에 관한 알레고리
세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저 생명수이다.  저런 나무 형태는 다양한 문명권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대부분 영원한 생명과 일련의 관련을 맺게 된다.  하다못해 한국의 신화를 보더라도 나무가 등장하니 말이다.  사실 영화 자체는 지독하게 복잡해 보이지만 의외로 단순 명료한 영화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을 초탈했을때 나타나게 되는 영원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남편이 보여주는 양상은 집요함이다.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 앞에서 부인을 살려내지 못한 자책감에 영원한 삶에 대한 집착이 나타나게 된다.  남편은 자신이 살려내고자 애쓰던 부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연구실에서 연구에 전념하게 되고 결국 죽어가는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다.  부인은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소설의 마지막을 완성시켜달라고 한다.  소설은 대충보아 여왕이 기사를 생명수를 찾아오라고 보내게 된 이후에서 멈추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소설의 결말은 생명수를 찾던 못찾던 양자 결단이 나야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결말을 남편에게 선택하게 하는 것은 자신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즉 마야의 신화처럼 죽음이야 말로 창조의 근원이라는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사실 저 남편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부인을 살리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고 결국 새로운 치료약이 발견된 그 순간에 부인이 자신을 떠나게 되니 저 상황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라 할수도 있겠다. 

결국 그는 자신의 관념속에서 부인으로 의인화된 생명수와 함께 시발바를 향해 떠돌아 다니게 된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시발바에 도착하면 부인이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관념들이 저러한 우주속의 황금빛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그는 결국 죽음 자체를 부정한채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치료법을 찾아 연구하게 된다.  죽음도 질병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을 연구팀은 외면하게 된다.  영원한 삶을 연구하겠다는 팀의 리더를 누가 신뢰하고 따르겠는가? 

자신의 관념속에서 시발바에 도착했을때 그는 문득 깨닫게 된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스페인이 영원할 수 있는 방법은?  왕권을 위협하는 종교재판장을 죽인다고 해결나진 않는다.  왕권은 되려 찰나적이고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것을 포기한다면 스페인은 영원할 수 있다.  자신의 부인과 영원할 수 있는 방법은?  찰나적인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때 그것이 가능해진다.  즉 죽음이 창조의 근원이라는 것은 죽음을 통해 전 우주의 품에 안긴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를 두고 각 문명권마다 다양하게 표현되곤 하지만 일자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그 일자는 빛이요.  그 빛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다.  우주 이야기로 표현되는 관념속에서 그는 빛을 향해 달려감과 동시에 소설속에서 그는 생명수의 수액을 마시되 온몸을 대지의 근원으로 환원시키는 결말을 선택하게 된다.  일자의 품으로 돌아간 그는 결국 그 안에서 부인과 하나되고 만물의 생명으로 뿌려져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  결국 죽음과 삶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남편은 부인의 무덤으로 돌아가 씨앗 하나를 심은채 끝맺게 된다.



마무리
다시금 강조하지만 영화를 과거 현재 미래 이런식으로 바라보면 안된다.  주 스토리는 오직 하나 현재 뿐이며 스페인의 이야기와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는 현실속에서 나타나는 그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스페인 이야기는 액자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고 우주 이야기는 중세풍의 알레고리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바라보면 영화 자체가 대단히 단순해진다.  어려울꺼 하나 없는 내용이다.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2596&videoId=11051&t__nil_main_video=thumbnail

위의 링크는 이 영화의 예고편이 있는 곳이다.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재미있어 보인다.  장난 아닐 정도로 말이다.  이건 마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며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한 남자의 액션 판타지 활극처럼 보일 정도이니 난 이 예고편에 낚여서 영화를 본 케이스이다.  개인적으로 마케팅에 속아서 본 영화이기에 궁시렁되며 마케터를 욕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너무 지겹고 그렇지는 않았었다.  의외로 흥미진진한 영화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우와 엄청난 예술성.  이런말은 입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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