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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2010), 당신안의 악마를 보았는가? 본문

영 화/한국 영화

악마를 보았다(2010), 당신안의 악마를 보았는가?

유쾌한 인문학 2010. 11. 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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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 없슴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다.  꽤나 많은 논란을 불러오는 작품인것 같다.  주된 이야기거리는 잔인함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불만은 잔인하다는 이 한마디로 시작하니 말이다.  하도 말들이 많아서 정말 제대로 잔혹극을 만들었나보다 싶었는데 글쎄 과연 그렇게 난리칠만큼 잔인한가?  라고 묻는다면 물음표가 찍힐 수 밖에 없다.  이걸 가지고 심의등급 난리친 것도 살짝 이해가 안간다고 할까?  혹자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고어 영화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았을때 이 작품에서 잔인하다고 하는 장면들만 딱 떼어내서 본다면 과연 잔인함을 느낄 수 있겠는가?

전혀 못느낄 것이다.  목이 잘려 뒹구는거?  다른 영화 하다못해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았었나?  발목을 짜르는거 역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 왜 그렇게 사람들이 몸서리를 치는 것일까?  평생 곱디 고운 분홍빛깔만 보고 살아온 인생들이라?  그렇다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 자체가 너무 지독하기에 잔인성이 배가 되어 다가온다고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최근 한국의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  이른바 성폭력 공화국이라는 현실이 영화의 상황과 맞닿으면서 여성들의 공포가 극대화 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미지의 문제
김지운 감독하면 떠오르는건 정말 스타일리쉬한 이미지들이다.  이 작품 역시 놓칠거 하나 없는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작품인 달콤한 인생에서 부각되었던 극단적인 대비 효과를 이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지운이 주로 사용하는 대비는 빛과 어둠의 극단적인 나뉨이다.  특정 부분에 빛을 과도하게 노출시켜서 그 빛 외부의 어둠을 더욱 부각시키는 방법이다.  이러한 대비는 그 상황에 놓여있는 캐릭터들의 감정선과 일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볼때마다 느껴지는 기가 막힌 이미지들이 아닐련지. 

영화를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싸이코가 사는 한적한 시골에 커다란 집이 하나 나오게 된다.  이러한 형태의 집 역시 김지운 영화에서 단골로 나오는 것이다.  이 집이 주는 이미지들도 유심히 보면 과거 작품인 장화 홍련이나 조용한 가족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는 형태이다.  뭔가 황량한듯하면서 반복적인 패턴의 벽지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 집이 보여주는 이미지들 역시 그 내부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의 내면을 정확히 그려내는데 일조하게 된다.  결국 집과 캐릭터의 내면이 만나면서 극대화 되는 형태인 것이다.  비슷한 예로 다른 영화를 들어보자면 아메리칸 싸이코를 들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싸이코를 뉴욕 한복판 최고의 고가 아파트에 위치시키면서 그 공간과 캐릭터를 조화시키게 된다. 

아메리칸 싸이코와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비교해보면 공간과 싸이코들의 만남을 통해 어떤식으로 극의 이미지가 달라지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메리칸 싸이코는 고가 아파트와 싸이코의 만남을 통해 현대성이 보여주는 광기를 표현하였다면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어두운 이미지와 나무로 된 집 그리고 패턴화된 벽지를 통해 인간 그 자체의 억압된 내면의 광기를 표현하는데 주안점이 놓이게 된다.  이렇듯 이미지는 영화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김지운 영화는 항상 그렇듯 이미지에 최대한 집중을 해야 한다.  이부분을 놓치고 간다면 영화는 보나마나 아니겠는가?




극장에서 나오면 순식간에 기억속에서 사라져가는게 영화인지라 한계가 조금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뇌리속에 남아있는 장면은 이병헌이 초반에 용의자들을 전부 추적을 하는 과정에서 아파트에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거실에서 잡는 씬이 있다.  거실의 불은 켜진 상태에서 방안에 들어가 불을 끄게 되는데 그때 방문 크기만큼 정중앙에 검은 선이 그이게 된다.  오른쪽 왼쪽은 여전히 하얗고 말이다.  위의 그림을 생각하시면 되겠다.  이 장면은 최민식이 주로 사체 절단 작업을 하게 되던 그 공간으로 카메라가 들어갈때 장면과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이러한 일치감을 부여한 이유는 이병헌 내면의 분열과 억압된 것의 솟아오름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즉 아파트씬이 단순히 분열과 억압의 솟아오름을 표현하였다면 최민식 작업장과의 일치를 통해 억압의 솟오름의 실체가 최민식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안의 악마를 보았는가?
사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평범한 인간 내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악마성에 대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자아 성립 이전의 유아기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파편적 인식과 그 파편화에 대한 공격성.  이것들을 억압시키는 것이 자아가 형성되면서 제일 처음 행하는 일이 된다.  결국 반대로 인간 자아가 무너진다면 억압된 그 근원적 공격성이 튀어나온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위에서 설명한 이미지인 것이다.  즉 극중 이병헌은 연인의 비참한 죽음과 동시에 자기 내면의 악마성을 보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를 보신분들은 느꼈을지 모르겠다.  당신안에 있는 악마성을 말이다.  영화 초반에 이병헌의 연인이 죽고 난 이후 모든 관객들은 극도의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기분.  그리고 자연스럽게 극중에서 죽어나간 이병헌의 연인을 놓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를 치환하여 생각하였을 것이다.  안그런가?  영화속에서 저렇게 목이 잘려 죽어나간 이병헌의 연인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였다면?  라고 치환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감정이 심하게 복받쳐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의 머리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복수이다. 

당신은 복수를 생각했고 극중의 이병헌은 복수를 시행한다.  거기에서 대단한 카타르시스가 도출된다.  파토스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꼭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급전 - 발견 - 파토스라는 공식을 따라야할 필요성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공식은 수많은 예중 하나일뿐.  파토스가 나오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런 방식인 것이다.  극도의 분노를 끌어낸 이후 그것을 대신 해결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복수의 재미 아니겠는가?  이병헌의 복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이미 당신의 머리속에서는 끊임없이 엽기적인 상상들이 흘러갈 것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과 함께 머리속에서는 어떻게 해야 가장 고통스럽게 복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  손톱사이에다가 바늘을 찔러 넣을까?  이빨을 하나하나 뽑아벌야 할까?  눈알에다가 바늘을 찔러넣는건 어떨까?  손가락을 마디씩 잘라내야 할까?  재미있는게 뭐지 아시는가?  이러한 생각들은 전부 신체의 부분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절대로 총체적 고통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신체 부위부위만을 떠올리며 그 부분에 가장 잔혹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자아 성립 이전에 존재하는 파편화된 신체에 대한 공격성이 억압에서 풀려나 당신의 의식으로 스믈스믈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은 이영화를 보면서 당신 안의 악마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니 이 영화가 지독하게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단순하게 잔인해서 불편해서 싫어요 라고 말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잔인한 영화가 아니다.  현실의 잔인함은 더 지독하다.  영화는 현실을 심의때문에 결코 표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영화의 상황에서 주어지는 공포와 더불어 당신안의 악마성의 확인을 통해 다시금 그 자체를 억압시키기 위해서 불편함과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최고점은 그 어떤 복수도 무기력해질때 발생하게 된다.  그때 뇌리속에서 살짝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한가지 존재한다.  "그래 최민식의 가족들을 잡아와서 죽여버려.  그놈이 보는 앞에서 아들의 사지를 하나하나 조금씩 절단해나가면 그 놈이 고통스러워할까?  그놈의 부모를 불에 태워죽이면 그놈이 고통스러워할까?"  이때가 당신안의 악마가 최고점에 다달은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단순히 영화를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중이기에 이 행동들이 실행되지 않는 것일뿐.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저렇게 변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악마를 본 것 아니겠는가?




마무리
최고다.  더이상 말은 필요없을듯하다.  단순히 잔인하다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안본다는 것은 정말 비극이 아닐련지.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여성분들은 보기가 힘들겠다 싶기도 하다.  요즘같이 흉흉한 세상에 이런 영화 보고나면 집밖에 무서워서 다닐수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해드릴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영화중에서는 상황자체가 가장 끔찍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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