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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순수의 시대,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본문

인 문/문 학

소설 순수의 시대,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유쾌한 인문학 2011. 3. 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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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턴은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로 그녀가 남긴 최고의 작품이 바로 순수의 시대이다.  1920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총 세번에 걸쳐 영화화가 이루어지며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이 마지막 영화화된 작품이다.  사람에 따라선 시대소설이라 조금 지겹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인 형태는 연애소설이기에 통속적으로 읽어보아도 무방하다.  무엇이 되었건 모든 픽션은 사랑이야기가 빠지면 사실 흥이 안나는건 사실이다.  다만 중요한건 당시의 시대적 배경하에서 그려지는 작품내 인물들의 태도이다.  이디스 워턴의 이 작품은 대단히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시대적 배경하에서 과감한 여성상을 드러내어 표현함으로 인해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적 양상은 아마 당대에 이미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떤 여권신장의 모습들 말이다.  다만 이러한 상황하에서 나타나는 태도는 외면인데 그것을 문학을 통해 과감하게 터치해 들어간 것이다.


아비투스와 19세기 뉴욕의 상류사회
시대적 배경이 19세기 뉴욕의 상류층이다.  나름의 귀족들과 부르주아 계층의 삶을 그려내는 작품으로 어떻게 보면 연애소설로 보아도 무방하다.  전반적으로 그려지는 양상은 대단히 화려하다.  파티는 주로 명문가의 대저택에서 이루어지며 그속에서 그들은 나름의 문화와 관습을 지켜가면서 파티를  즐기게 된다.  그들이 행하는건 단순히 파티와 고급문화의 향유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대단히 독특한 관습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 관습은 어떻게 보면 아주 유치하고 불합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이러한 고급 문화를 즐기는 특성은 하나의 구별짓기의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아주 대단한 고급문화라고 생각하는 오페라나 발레 그외 현대 미술등의 감상등은 사실 일정한 문화적 코드에 익숙해져야 함을 전제로 한다.  문화적 코드 그 자체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왠만해선 즐기기 힘든 그런 양상의 문화들이 바로 저러한 것들이다.  저러한 문화적 코드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착취라고 하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귀족들이 대부분 향유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착취에서의 자유로움은 지배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된다. 

이는 문화적 코드에 의한 지배 문화의 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코드는 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교육에 의해서 형성된다.  바로 이러한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 영화는 오페라의 감상과 파티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 코드를 초반에 제시하여 뉴욕의 귀족이라는 특정 그룹을 그외 인간들과 정확히 구분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 귀족이라는 그룹안에서 세명의 주인공이 나타나게 되니 그들이 바로 아처와 메이 그리고 엘렌이다. 

이 세명의 주인공은 모두 대단한 집안의 구성원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성격에서 나타나게 되는바 아처는 아주 법률을 공부한 매우 합리적인 인물이지만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할 용기는 없는 수동적인 인물이다.  아처의 약혼녀인 메이 역시 많은 부분에 있어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여성이지만 그녀는 관습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관습의 화신같은 여성이다.  한편 엘렌은 유럽의 백작에게 시집갔다가 이혼하고 돌아온 여성으로 매우 자유분방한 여성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두여성의 사이에서 아처가 방황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골자가 된다.

엘렌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양상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그녀는 분명히 귀족출신이고 문화예술적 소양도 아주 높은 인물이다.  즉 그녀는 고급 문화 코드의 향유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녀가 이혼하고 돌아왔을때 뉴욕의 상류층은 그녀를 향해 매우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아비투스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도식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것은 순수 의지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오랜시간 내려온 도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타령은 상상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고 상징적 기표로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그딴건 부차적인 요소일뿐이다.  결국 도식이란 사회적 관행을 형성하고 그 관행에 위반했을 경우에 일정한 제재로서 나타나게 되는바 엘렌이 당하는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뉴욕의 상류계층이 보유하고 있는 도식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엘렌은 이혼을 하고 돌아온 여성이다.  바로 이지점에서 보편적 상류계층과 엘렌사이의 구별짓기가 형성되게 되며 이로 인해 엘렌은 차별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성은 일종의 상징적 폭력이다.  다양한 계급적 구별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 지배의 피지배를 향한 억압적 폭력 바로 그것이 아비투스의 핵심적 요소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일련의 양상속에서 아처가 보여주는 행위가 흥미롭다.  그는 매우 합리적인 인물로서 이러한 일련의 관습적 요소를 매우 숨막혀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엘렌의 존재는 탈출구이자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저 자유분방함.  하지만 그에게는 과감하게 그녀를 따를 용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메이의 곁에 남아 합리성보단 관습에 맞춰 살아가는 인물로 돌아서게 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답답한 인물이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이 가지고 있는 도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당신의 삶을 생각해보아도 자명한 것 아닌가?  한 인간이 속해있는 다양한 집단적 양상과 그로 인해 펼쳐지는 온갖 상징적 도식들은 그 견고함이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이러한 외면적 도식의 견고함과 내면적 주체가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처인 것이다.   결국 그는 외면적 도식의 견고함에 굴복하는듯보이지만 항상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엘렌적 자아에 의해 혼란스러운 인물이 된다.  사랑 타령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이 어쩌고 하겠지만 이것은 아처가 가지고 있는 내면적 혼란 즉 자유와 인습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열적 양상인 것이다. 


메이와 엘렌의 대립적 성향
이 작품의 가장 중심에 놓이는 것은 앨런이 보여주는 전반적인 자유분방함이다.  뉴욕 출생이지만 많은 시간을 유럽에서 보내다 이혼하여 돌아온 여성.  상류층 출신으로 높은 교육을 받고 교양수준도 상당하지만 그녀는 뉴욕 상류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으로서의 수행을 과감하게 거부한다.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철저하게 배제한 그들만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가식적 기만성을 철저하게 폭로해들어가는 엘렌은 아처를 끊임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반면 메이는 철저하게 뉴욕 상류사회가 규졍한 여성성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인간으로서의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욕망은 철저하게 억압시킨채 요구되는 것에 대한 충실한 이행에 적합하다. 

이 두여성의 극적인 대비는 여성 인권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 된다.  혹자는 앨런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되 아처로 하여금 자신이 짊어져야할 의무에 대해서도 충실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부분이 중요한 포인트인데 결국 앨런이야 말로 타인에 의해서 강요된 의무의 짊어짐이 아닌 자유의지에 의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똑같은 결과이지만 그 과정은 분명 다르다.  타인에 의해 강요된 것의 짊어짐과 자유의지에 의한 짊어짐은 분명 같은 결과이더라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떤면에서 보면 유럽과 미국 청교도 문화를 다 경험한 여성으로서 양문화의 능동적 조화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시대적 한계를 극복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제시라고 볼 수도 있겠다.


마무리
좋은 작품이다.  사람에 따라서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당시 뉴욕 상류층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도 있고 당시부터 싹트고 있던 여성권 향상의 전조를 확인할 수도 있으며 뉴욕과 유럽의 문화적 차이도 약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한 작품이 바로 순수의 시대이다.  어려운 책도 아니고 가볍게 볼 수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책을 굳이 보기 싫다면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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