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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2(2011), 메이터 넌 루저가 아냐.. 본문

영 화/애니메이션

카2(2011), 메이터 넌 루저가 아냐..

유쾌한 인문학 2011. 7.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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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s 2
픽사의 11번째 작품으로 감독은 존 라세터이다.  존 라세터 감독의 작품은 토이스토리1, 벅스라이프, 토이스토리2, 카1, 카2에 이른다.  카1이 나왔던 당시 라세터 감독은 토이스토리2를 대성공으로 이끈 후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나 재충전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영감이 여기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픽사의 기술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동차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정말 차를 보는듯한 금속성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내면서 그 자동차로 표정도 나타내고 손짓 발짓까지 다 표현하게 된다.  그러면서 실제 레이싱 장면에서는 실사영화와 거의 차이점이 없을 정도의 장면을 그려내니 실로 놀라운 기술력이 아니겠는가?




픽사의 범작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미국에서 혹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남이야 혹평을 하던 말던 나만 좋으면 그뿐인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픽사 애니메이션이 혹평을 받았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기에 카2에 대한 기다림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영화를 직접 보고나니 그 혹평의 원인이 뚜렷하게 눈에 보였다.  일단 가장 큰 부분은 픽사다움의 상실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픽사다움이라는 말이 굉장히 두리뭉실하게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픽사 애니메이션을 전부다 보신분들이라면 막연하게나마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픽사는 일상속의 보편성과 흔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끄집어내 그 위에 이야기를 덧칠하여 환상적으로 제시하는데 최고의 재능을 보여왔다.  즉 보편적 교훈에 색다른 시각을 덧칠하여 재미와 동시에 감동을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카2에서는 이러한 측면이 조금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는 카1과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나는데 1탄의 경우는 실질적 주인공인 66번 국도와 최고의 스포츠카 맥퀸의 대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여운이 굉장히 컸다.  하지만 카2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카1 아니 픽사의 모든 작품들에 비해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혹평의 원인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진 않다.  픽사의 범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결국 타 제작사와의 비교가 아닌 픽사 자신들의 기존 작품과 비교했을때의 범작이라는 의미이니 말이다.  




메이터의 이야기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카는 주인공으로 스포츠카 맥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진정한 주인공은 다른 곳에 존재한다.  카1에서는 66번 국도 그 자체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카2의 경우는 메이터가 실질적 주인공의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메이터는 촌구석에서 살아가고 있는 견인차이다.  못배우고 어떻게 보면 몰상식해 보이기도 한 전형적인 이 시대의 루저차이다.  새끈하게 잘빠진 몸매도 없고 여기저기 얼룩진 차체와 특 튀어 나온 앞니 두개를 가진채 도시에서 민폐만 끼치게 된다.  뭔가 악의를 가지고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처음 보고 신기한 것에 대해서 호기심 어린 반응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버렸다고나 할까?

악당들은 더 재미있는데 악당의 수하들은 똥차라고 불리는 자신들에 대한 분노를 외부로 끊임없이 발산하고 있는 중이다.  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음모에서 이용당하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결국 어떤 분노가 있기에 악당질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측면은 영화 후반에 이르러 메이터가 잡혔을때 보게 되는 환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자신이 행했던 모든 일들을 3자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주변의 다른 차들이 똥차 취급하며 비웃는 꿈.  그 꿈이야 말로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으며 루저문화의 애니메이션화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사회 전반이 돈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속도경쟁을 하면서 사람들은 진정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면서 닥치게 되는 현상은 바로 인간소외이다.  군중속의 외로움이나 삶의 무의성 같은 것 말이다.  결국 이러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더욱 더 물질적 가치에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 인간소외는 더욱 심화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답을 묻곤 하지만 우린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한바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메이터가 말하지 않는가?   Sir 메이터 보단 그냥 메이터라고 불러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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