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그저 돌고 돌 뿐.

  화투(花鬪),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이라니? 이보다 낭만적인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화려한 화투장 뒤편엔 비수가 되어 꽂히는 싸늘함만이 가득하다. 영화 타짜는 이러한 화려한 싸늘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니(조승우)는 우연히 화투판에 끼어들어 3년간 모은 자신의 돈과 이혼한 누나의 위자료를 전부 날려버린다. 단지 운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모든 것을 잃어버린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고니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은 운이 지배하는 도박판이 아닌 기술과 구라가 함께 상존하는 타짜들의 세계였다.

  정 마담(김혜수)의 말마따나 삶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하필 그날 고니는 박무봉이라는 타짜를 만났고 고니 누나는 남편한테서 위자료를 받아왔으니 우연치곤 참 지독하지 않는가? 평범한 공장의 노동자가 누나 돈으로 도박하다가 타짜가 되다니 이것만큼 기막힌 이야기도 없을 것 같다. 이렇듯 삶이란 수많은 우연이 만들어낸 드라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에 모든 걸 맡긴 채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떤 불확실한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예측할 수 없는 운이 아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필연을 만드는 것이다. 타짜란 바로 나에게 유리한 우연을 만들기 위해 패를 바꿔치는 필연을 향한 갈망이다.

  누나의 돈을 갚으려고 구라를 배운 고니와 구라치는 놈 손모가지를 자르고 싶은 아귀(김윤석) 그리고 돈만 챙기려고 했던 정 마담. 끝없이 물고 물리는 이들의 관계는 하나의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가지고 싶다.’라는 욕망이다. 정 마담이 퇴역한 장군을 벗겨 먹기 위해 고니와 함께 작업에 들어가면서 던진 이 유명한 대사는 인간의 본질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누가 더 짙은 욕망을 보여주느냐의 문제이다. 다만 욕망은 거대한 판때기 위에서 돌고 돌뿐이다. 마치 도박판에서 돈을 딴 자도 잃은 자도 없이 그냥 돌고 돌뿐이 듯이.

  그들은 가지기 위해 서로서로 속인다. 서로를 속여 우연인 척 필연을 만들어낸다. 손자병법 시계편에서 말하듯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남을 속이는 일이다. 언 듯 보기엔 사기를 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안엔 상대의 착각을 유도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진짜 능력을 감춘 채 상대방을 현혹게 시키거나, 수많은 군대(타짜)를 동원하지만 상대에겐 없는 것처럼 보이거나, 결국 이 모든 건 나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전략은 짝귀(주진모)가 말하듯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전쟁이던 도박이던 결국 이는 가지기 위한 싸움이다. 가진다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네 편 내 편이 무슨 상관일까? 따라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존재할 수가 없다. 오직 존재하는 건 돌고 도는 욕망의 흐름뿐이다. 이에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어느 무엇도 아닌 상대방의 가장 간절한 욕망을 읽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상대의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정확한 승산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읽어낼 수 없다면 그 싸움은 질 수밖에 없다. 고니는 아귀와의 마지막 화투판에서 그들의 욕망을 읽어낸다. 그들의 욕망이 흐르는 지점을 바라본 채 확실한 곳을 포착하여 승부를 건다. 이미 승리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판 위의 신세계는 가능할까?

  돌고 도는 욕망의 흐름은 영화 신세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타짜와는 달리 신세계는 바둑을 근간에 둔 채 싸움을 진행한다. 바둑은 흑과 백 두 개의 돌을 이용하여 집을 짓는 싸움이다. 내 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싸움은 나에게 유리해진다. 바둑판 위에서 내가 짓는 하나의 집은 완전한 내 공간이자 독립된 세계이다. 나는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것들을 지키면서 내 집을 더 넓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바둑이 가지고 있는 묘미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저 거대한 판 위에 놓인 바둑알 하나하나가 만약 살아있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전해줄까?

  영화 신세계는 바둑알들이 꿈꾸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대한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각 세력의 다툼은 각자가 바라는 욕망을 잘 보여준다. 내 집을 지키고 더 큰 집을 도모하여 나를 중심으로 한 세계를 크게 그리는 것. 그리고 그런 야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 속 바둑알들이 보여주는 삶의 양식이다. 이자성(이정재)은 조직 폭력 기업인 골드문의 서열 4번째 보스이자 비밀경찰이다. 대략 6년 전 강 과장(최민식)은 신입 경찰인 자성에게 잠입 수사를 명하고, 이후 그가 조직의 이인자인 정청(황정민)의 오른팔에 오르자 그를 이용해 골드문을 견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골드문의 최고 보스인 회장이 사고로 사망한다. 이에 후계자 자리를 놓고 조직의 또 다른 이인자인 이중구(박성웅)와 정청이 충돌한다.

  베테랑 형사 강 과장은 이 기회를 잘 살려 경찰에게 가장 유리한 그림을 그리려 한다. 정청과 중구 쌍방을 자극하여 그들끼리 충돌하게 한 이후, 그는 꾸준히 자신의 집을 지어나간다. 전형적인 이이제이 전략이다. 이를 위해 강 과장은 자성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이제 그만두고 싶어하는 그에게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며 스파이짓을 강요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자성과 같은 스파이를 두고 사간(死間)이라 부른다. 이들은 죽기를 각오한 채 아군을 위해 스파이가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강 과장은 그런 자성을 깡패 새끼라고 부르며 경찰취급을 해주지 않는다. 일단 맡겼으면 굳게 믿어야 하는데 이들은 더는 믿어주지 않는다.

  과거 강 과장이 어떤 마음으로 자성을 스파이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좋은 의도였을 수도 있을 테고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범죄 조직을 관리하겠다는 욕망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흘러다니게 된다. 그의 목적은 분명히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더 큰 야심과 함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린 그는 그 어떤 감정도 없는 듯 차가운 모습과 함께 지키고자 했던 바둑판 위의 집도 상실해버린다. 그의 신세계는 일장춘몽에 불과하였다.

  반면 정청은 자성을 줄곧 브라더라고 부르며 가까이한다. 단순히 부하를 넘어선 동반자에 가까운 형제 같은 사이이다. 심지어 그는 자성이 비밀경찰임을 알게 된 후에도 그를 처단하지 않고 여전히 형제로서 대해준다. 이는 자성을 향한 애정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항상 쾌활한 정청이 꿈꿨던 신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바둑판 위의 권력도 돈도 아니었다. 다만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좋아하는 동생과 술이나 먹고 짝퉁 명품을 가지고 농담이나 따먹는 시답잖은 행복이 바로 그가 꿈꿨던 신세계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세계를 지키지 못한 채 죽음으로 끝맺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정 마담의 가지고 싶다는 말은 이내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타짜 속 화투판에서 내려지는 결론은 오직 두 가지이다. 잃거나 잃지 않거나. 사실 가진다는 결론은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타짜들 역시 안정된 부자는 되지 못했다. 어쩌면 이 싸움은 가지기 위한 싸움이 아닌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한 싸움일지도 모르겠다.

  자성은 도대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에 휩싸인다. 이제 그는 자신이 흰색 편인지 검은색 편인지조차도 알 수 없다. 어느 집에도 속하지 않는 그는 바둑판을 깨버리길 바란다. 어쩌면 그가 바둑을 열심히 배우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짓는 집의 허망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신세계라는 말에서 이미 알 수 있듯 기존의 바둑판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특정한 집에 반드시 속해야만 하는 바둑판 위의 세계는 돌고 도는 욕망이 위치하는 하나의 망일뿐 그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어떤 종류의 욕망이든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돈이나 권력 같은 특정한 지점에 집착하지 않은 채, 돌고 도는 욕망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버리면 나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위해 최고의 전략을 선보였던 고니와 자성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판때기와 바둑판 자체를 떠나버린다. 그곳이 그들에게 슬픔의 감정밖에 주지 못하기에 그들은 더 큰 자유를 위해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관계를 찾아 떠난다. 그 관계는 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짜 행복을 통한 살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1. 재호

    | 2014.09.24 12:45 | PERMALINK | EDIT | REPLY |

    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글이 올라왔네요 ^^; 신세계에서 정청이 꿈꾸던 세계는 틀이라는 범주를 벗어나기는 힘들었네요. 틀속에서 욕망을 표출하며 사는 . 방법이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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