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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1995), 눈감으면 벌어지는 또다른 세상 본문

영 화/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1995), 눈감으면 벌어지는 또다른 세상

유쾌한 인문학 2010. 1. 11.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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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스토리(Toy Story)
데카르트는 생전에 모든 것을 의심했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정말 느끼는 것일까?  자기가 보는 것은 정말 보이는 것일까?  어떤 악마가 자신을 완벽하게 기만하는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데카르트만 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면의 또다른세상에 대한 상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에 눈을 감으면 그 순간 악마들의 세상이 열리는줄 알았었다. 아무튼 픽사는 1995년 이런 상상을 장난감에 적용하여 기가막힌 3D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게 된다.

픽사는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를 대성공으로 이끈 후 올해 개봉한 업에 이르기까지 총 10편의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각 작품마다 최고의 성공을 거둠은 물론 기술적 측면에서도 엄청난 진일보를 이루게 된다.  사실 3D 그래픽 기술의 역사는 픽사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초창기 개발단계 인력들이 대부분 픽사와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토이스토리가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만화를 좋아하는것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어른들까지 토이스토리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눈감으면 벌어지는 또다른세상
토이스토리의 이야기.  즉 사실 장난감들은 살아있고 내가 안보던 사이에 움직인다는 상상은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해본 생각일 것이다.  다만 당신이 기억을 못할뿐.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이면에 또 다른 우리가 모르는 실체의 세상이 살고 있다는 상상은 인류역사를 놓고 모든 문명권에서 진행되어온 것이다.  과거에는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에 대한 상상은 보통 신이라는 절대자나 귀신같은 것으로 상상되었지만 현대에서는 우리 주변의 작은 물건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은듯하다.

결국 토이스트리는 우리주변의 작은것에 부여한 상상력이 실체화되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옴과 동시에 95년 당시에 구현되었던 엽기적일만큼 놀라운 기술력이 얹어져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해주는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할터 여기에 한가지가 더 얹어지니 그것은 우디의 질투와 버즈의 실망이라는 부분이다.




우디의 질투와 버즈의 실망
앤디의 생일에 새로운 장난감이 들어오게되자 다들 긴장하게된다.  그중 우디의 긴장감이 최고일것이다.  그는 현재 앤디의 총애를 듬뿍받고 있는 장난감이니 말이다.  앤디의 잠자리에서 옆에 누울 수 있는 것도 우디이고 어딜가던 데리고 가는 것도 우디이다.  사실 우디도 온지 1년 밖에 안된 장난감이니 자신의 위치에 대한 위기감이 없잖아 있었을터.  아니나 다를까.  새로들어온 장난감인 버즈는 날개도 달려있고 우주인 헬멧도 온오프 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앤디는 버즈에게 마음을 뺏기게 되고 우디는 버즈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게 된다. 

버즈에게도 나름의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극의 중반에 이르면 극중 최고의 악당인 시드의 집에 우디와 버즈가 갇히게 되고, 도망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버즈는 티비에서 자신의 광고를 보게 되고 그를 통해 결국 자신이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버즈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금 하늘을 날아보지만 끝없이 추락하는 자신과 부러진 팔을 확인할뿐이다. 

그때부터 모든걸 자포자기하는 버즈.  자신이 이제껏 해왔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며 반폐인이 되어버린다.  급기야 절호의 탈출기회마저도 놓쳐버리고 다음날 씨드에 의해 폭파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그날밤 우디의 설득에 의해 버즈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그 내용은 "버즈 너는 너의 주인인 앤디에게 있어 최고의 우주전사이다"라는 것이다.  버즈가 힘을 차리게 되는 것은 결국 전세계를 책임지는 우주전사는 아닐지언정 한사람에게는 최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확인덕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버즈가 자신이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하게 될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 공감을 하지 않았을까?  어린시절엔 누구나 원대한 꿈을 꾸며 그 꿈속에서 살아가지만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 수많던 꿈들이 현실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은 사실 부모님이 생각하시는것과는 달리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덩달아 깨달아가는 일련의 과정의 경험이 버즈의 경험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우디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자리에 있더라도 언젠가는 밀려날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  그와 관련한 불안감 따위들 말이다.  이런 저런 냉정한 현실의 직시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역시 버즈가 앤디에게는 최고의 장난감이듯 인간 역시 아무리 사회적으로 루저 취급받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 아닐련지.  이런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앤디와 시드

토이스토리는 몇가지 대립양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의 관계.  그리고 앤디네 집 장난감과 시드네 집 장난감들.  그리고 앤디와 시드 그 두명이 아이들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앤디와 시드의 명확한 대비이다.  앤디는 장난감을 아끼면서 즐겁게 노는 아이지만 시드는 장난감을 분해하고 폭파시키면서 노는걸 즐기는 아이이다. 

얼마전에 픽사와 관련한 다큐멘타리를 본적이 있었다.  대단히 많은 위기를 겪은 회사였지만 열정으로 여기까지 헤쳐온 회사였는데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회사 분위기였다.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곳은 그냥 놀이터였다.  아무데서나 자전거타고 놀고 아무 벽에나 낙서하고 심지어 벽에 구멍을 뚫는등 무슨 짓을 해도 다 용납이 되는 자유로운 환경이다.  발언권에 있어서도 제한은 없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모든 상상력을 다 말할 수 있고 다들 재미있어하며 그 상상력을 서로서로 보태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며 궁극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의 투영이 바로 앤디네 집의 장난감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반면에 시드네 집 장난감들은 어떠한가.  찢어발겨 이렇게 이 장난감의 목과 저 장난감의 몸뚱이를 합체시키는 짓을 서슴치 않게 행하다 급기야 폭파시켜버리는등의 만행을 저지른다.  사실 이런 모습을 통해서도 왠지모를 동질감을 얻는건 아닐련지.  이 사회가 가지는 기업문화라는게 개인의 자아를 해체하고 이리저리 갖다붙여 기회적 인간의 양성하고 그러다 막판에 쓸모없어지면 폭파시키는 문화가 아닌가.  그러면서 티비 광고에서는 생각대로 하라고 난리이니 이 어찌 웃기는 일이 아닐련지.  정말 소름끼치는 획일성 앞에서 생각대로 하다간 죽도 밥도 안되던게 이나라의 문화 아니었던가?

더 심각한건 이러한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성이라고나 할까.  하긴 아직도 빨갱이 타령과 국가주의가 먹히는 나라이니 오죽할까.  무비판적인 자유주의의 확산은 모든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게 되는 몰상식한 행동을 낳게 되었고 여기에 기존부터 존재해오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절묘하게 얽혀들어가면서 단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되 개인의 희생은 자유주의의 결과인 당신의 능력부족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돌리게 되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이던가.  그리고 사회전체가 가지고 있는 이런 모순적 담론을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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