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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빨갱이냐? 빨갱이 이데올로기와 국풍81

유쾌한 인문학 2011. 1. 24.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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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부시절.  정말 살벌하게 무서운 사상검증이 존재했다.  난 저 시대를 살지않아 모르겠지만 텍스트만 봐도 살떨리고 영상만 봐도 두렵다.  우리가 오늘 확인할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사상검증.


군사정권의 효율적인 통제수단
어느날 세상이 바뀌었다.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웠고 갑자기 군정이라는걸 실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박정희의 시대 즉 군인들의 시대가 열렸다.  박정희가 했던 말중에 가장 폼나고 멋진말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앞으로 나같은 불행한 군인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라는 나름의 명언을 남긴채 정치의 한복판으로 나선 그는 나름 괜찮은 성과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과의 표차이는 90만표차이였다.  문민에게 이길 수 없는 군인.  돈을 그렇게 때려부어도 무슨 짓을 해도 90만표차이.  다음 선거에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던 그는 유신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보라.  90만표차이를.  4.19로 독재를 엎어버리고 돈을 그렇게 때려박아도 90만표차이를 보이는 저런 국민성을 가진 나라의 사람들을 유신을 해도 아무말도 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즉 반드시 효율적인 통제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빨갱이 담론
90만표차이를 보인거 보니 박정희가 딱히 마음에 안들었던 사람이 많았나보다.  그렇다면 정권의 입장에선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내가 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큰 무언가로 덮어버리겠다.  그리고 애국심을 강조하고 외부의 적을 형성하여 끊임없이 위기를 강조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잊혀져버리게 된다. 미국을 보면 아시겠지만 무슨일만 터졌다하면 항상 미국 국가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럴땐 항상 외부의 적을 반드시 설정한다.  언론은 이 외부의 적에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방송을 하게 되고 대중은 그 언론을 통해 외부의 적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내부의 일은 잊혀져 가는 것이다. 

우리는 뭐 굳이 외부의 적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존재하니깐.  다만 위기감을 끊임없이 조장하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빨갱이 담론이다.  어떻게 조장하는가?  국내 내부의 일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일단 빨갱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리고 이들이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면서 언론에 퍼트리고 대중은 이를 믿게 되고 이게 계속 확대재생산되면서 자연스럽게 위기국가화를 조장한다. 

이러한 위기국가화의 조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행정국가화 현상을 불러오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권위주의적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나라 권위주의 대통령의 발생 배경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나라는 뭐 말이 좋아 3권분립이지 철저한 행정 1권의 국가이다.  정당국가화 현상에 이어 오늘날의 전문영역으로서의 행정의 필요성에 의해 2권이 어느정도 합쳐지는 현상은 분명 있지만 한국은 그 도를 넘어선다.  국회는 1인 보스 정당 정치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1인 보스는 대부분 대통령을 겸해왔다.  1인 보스가 정부와 국회를 장악한채 사법부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사실상 사법부도 장악하게 된다.  여기에 검찰 인사권도 가지고 있으니 게임 끝난 것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요즘은 좀 완화된 모습을 보이곤 있지만 크게 달라진건 없다고 본다.





3S
생각하지 말라.  이 순간을 즐겨라!!    다들 아시다시피 전두환 정권은 광주대학살을 만행을 덮기 위해서 다양한 쇼를 벌인다.  그중 가장 큰 행사가 바로 이 국풍81.  KBS가 주관한 이 행사는 5일간 무려 천만명이나 되는 관중을 동원하며 매우 성공적으로 치뤄지게 된다.이 행사는 대학가에도 꽤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역시 그 의도는 명확하다.  국풍81과 관련된 자료를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학원문제의 부분해소, 학원문제를 국풍으로 유도, 축제 속에 매몰, 학원의 고질적 국면 타개, 문제서클을 차단 고립 소수화, 민속서클을 체제 속으로 흡수, 반체제적인 대학사회의 전통문화붐을 체제화.

결국 전두환 정부가 노린 것은 이 행사를 필두로 하여 대중문화를 통한 지배논리의 강화이다.  국풍 81 이후에 전두환 정부는 대중문화를 대하는 태도를 규제에서 방치로 바꾸게 된다.  물론 방치를 하되 기본적인 '불온한 것'에 대한 검열은 당연히 존재했었다.  전두환 정부의 방치논리는 저급한 즉 퇴폐적이되 불온하지 않은 것들에만 적용되었고 그때 만들어진 각종 정책을 우리는 3S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대중을 지배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본주의의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다들 아시다시피 전두환시대가 이나라 최대의 호황기 아니었나?  내가 듣기로 대학만 졸업하면 대기업취직은 누워서 떡먹기라고 들었다.  하지만 호황기이면 뭐하나..  뭐하나 즐길만한 것이 없는데 돈맛을 봤으니 즐기게 해주면 아주 좋아할터..  그게 바로 3S의 핵심이다.

돈많으니 어디가서 여자를 사서 즐기게 해주고 돈많으니 영화도 보게 하고 스포츠도 즐기게 하고 얼핏보기엔 저 세가지만 지칭하는것 같지만 3S는 저 세가지만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대중문화산업의 전반적인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확대는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의 확대만을 의미할뿐 여전히 정권에 적대적인 문화에는 지독한 탄압이 들어가게 된다.  


우리사회의 프레임
결국 우리는 저러한 프레임에 의해 교육받고 이 사회에서 살아왔다.  자본주의에 맛들린 국민들은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게 되었고 빨갱이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으며 이게 확장되어 지역감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게 이땅의 본질이다.  거대한 프레임과 그 속에서 살아숨쉬는 우리들.  중요한건 이 프레임의 실체를 볼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이런 부분이 아닐련지.   그렇다면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문이라는걸 유심히 보다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되는데 특정 단어의 강조이다.  이는 하나의 프레임을 이루게 된다.  즉 하나의 프레임으로서 연설을 시도하여 사람들을 그 프레임속에 가둬버리는 방법론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핵심 단어의 선택이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연설의 목적은 사람을 논리적인 사고로 이끌어가는것이 아니라 사람을 흥분시키고 자극시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내는게 주목적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논리일관성이나 진실을 담보하는 연설문은 그렇게 중요한것이 아니다.  중요한건 단어의 선택이고 사람들을 비논리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한 사회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가지 룰이 존재하게 되고 그 룰은 일종의 프레임이 되어 교육을 통해 우리의 뇌리속에 깊이 박히게 된다.  이러한 프레임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또는 지배적 담론과 비슷한 성격인바 뭐 여러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건 이러한 프레임의 핵심은 단어이다.  우리는 흔히 하나의 단어를 봤을때 그속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프레임속에서 단어의 선택을 통해 사람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내 프레임에 가둬버리는 방법이다.

예컨대 통일이라는 단어를 외국인이 본다면 아무런 감흥을 못느끼겠지만 한국인이 본다면 뭔가 가슴 벅차오르는 그런 느낌 같은것 말이다.  배고픔이라는 단어는 어떠할까.  이 단어는 아마 세대에 따라서 다르게 각인될 것이다.  노년층은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아주 큰 고통과 서글픔, 슬픔을 느끼겠지만 젊은층은 그냥 동정 정도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이는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말의 덫이라는 것이다.  보수적인 정당들이 툭하면 자유와 경제, 먹거리를 강조하는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수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프레임의 핵심은 아버지의 절대성에 존재하게 된다.

가부장적 사회의 특징은 아버지의 절대성에 존재한다.  가장이 식구들을 책임진다는 생각이나 식구들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생각이 가부장적 사회를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프레임의 지배를 받는 사회는 권위를 중시하게 되는 특징을 보여주게 되므로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정치에서는 특정 지도자의 권위가 중요시되게 된다.  우리 머리속에 깊숙히 박혀있는 가부장적 프레임은 권위에 대한 도전을 감히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데 쉽게 말해 당신의 가정에서 아버지에게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그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다른 영역으로 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지는데 예컨대 한나라당이 진보정당을 향해 무능하고 국민을 지킬 수 없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고 거기에 공감을 일으킨다거나 특정 정치인의 비리에 대해 저정도 해먹는거 가지고 라는 발언들 그리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을 들 수 있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해보자면 '무능하고 지킬 수 없다'는 비난을 통해 국민들의 무의식에 돈못벌고 무능한 가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러한 가장의 모습은 가부장적 사회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기에 그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게 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인간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당신이 정말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짜만들어진 조작체라면 과연 당신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프레임론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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