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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그리고 자유로부터의 도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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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그리고 자유로부터의 도피

유쾌한 인문학 2011. 1. 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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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사회계약론 3권 15장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영국의 인민은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큰 잘못이다.  그들이 자유인 것은 의원을 선출할 때뿐이며, 의원이 선출되면 영국 인민은 노예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 짧은 자유로운 기간에 그들이 자유를 어떻게 쓰는지 보면 자유를 잃는 것도 당연하다."


소극적 자유

1차 대전이 끝난 후 이 싸움의 결말로서 인간은 자유를 향한 궁극적인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몇세기에 걸쳐 싸워온 자유라는 가치를 단 한순간에 버리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정치체제 그리고 그 체제의 권위에 사람들은 복종함으로써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파시즘이죠.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후 독일의 사정은 아주 열악했으니깐요.  극한의 상황에 놓여버림으로 인해 자기자신을 놓아버렸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그런 극한의 상황은 아주 많았거든요.  그럼 원인이 뭘까요??

원인은 데카르트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신을 죽이진 않았지만 인간을 중심에 세워버렸죠.  '생각하는 나'라는 명증성 위에 이 세상을 재구축해나가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신까지 말이죠.  결국 이는 지난 과거 신이라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즉 소극적 자유를 얻어냈습니다.  


적극적 자유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기본 본성중 하나로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이를 주관적 자의식이라고 하지요.  즉 자기 자신을 자연이나 타인과는 다른 계기로 인식하는 사고능력을 말합니다.  자신을 이 세계나 타인과 다르게 의식함으로써 즉 이 거대한 대우주와 나 이외의 이 세상든 사람들과 비교했을때 나 자신이 얼마나 볼잘것 없고 허무한 존재인가에 대한 의식을 말하는겁니다.

여러분들도 그런생각 한번쯤은 다 해보셨을겁니다.  이 대우주에 비하면 난 정말 한낱 먼지같은 하찮은 존재이고 이 수십억명의 사람들 속에서 난 정말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  바로 이겁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인간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못하다면 자신의 무의미성에 압도당해 버리게 되며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결국 살아갈 능력을 잃게 됩니다.

결국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또 다른 억압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기댈 곳이 없으니 사람들은 국가에 기대고 권위에 기대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전체주의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뛰어넘어 무엇을 향한 자유.  즉 적극적 자유를 지향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제에서의 적극적 자유 - 삼성
작년 말쯤에 삼성 사건으로 말들이 많았던거 다들 기억하실겁니다.  저도 그때 저 어딘가 구석에서 미칠듯이 삼성을 깠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일 많이 들은말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이말이었습니다.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  삼성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면 어떡할 것이냐?? "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삼성은 절대로 본사 미국으로 못옮깁니다.  본사를 옮긴다는 말의 의미는 법인을 옮긴다는 말일텐데 삼성같이 부도덕한 회사는 미국가면 아마 해체 당할겁니다.  가고 싶어도 못가죠.  미국은 MS마저도 분할시켜버릴려는 시도를 하는 나라입니다.  엔론 사태 보십시요.  삼성보다 더 큰 그 엄청난 회사를 한순간에 박살내버립니다.  한치의 고민도 용서도 없습니다.  작살내버리죠.

아무튼 여러분들은 왜 그렇게 삼성에 목을 매시는겁니까??    삼성이 이나라 대한민국의 근대화의 역사라구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요.  삼성이 이나라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니라 이나라 대한민국이 삼성을 만들어주고 키워주고 보듬어준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였습니까?  저 몇몇 대기업을 만들어내기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권리를 그들에게 주장하지 않은채 그들의 종이 되려 하십니까??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려요??  아니에요.  한국이 삼성을 먹여 살린겁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아버지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희생위에서 만들어진겁니다.  왜 우리는 삼성같은 기업에게 적극적인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는건지..  정말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정치에서의 적극적 자유 - 선거
지역정당 체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선 선거구제 개편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선거구제개편을 하면 보수양당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말이죠.  그런데 솔직히..  굳이 선거구제 개편 할 필요 있습니까??  그거 할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적극적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딴걸 귀찮게 왜 합니까??  과거 군사정부 시절이 좋았다구요??  권위에 기대고 싶으십니까??  

당신은 여전히 적극적 자유를 향해나아갈 의지가 보이지 않는군요.  소속되고 싶으십니까? 그럼 여러분의 이웃들과 다같이 살 수 있는 그곳으로 소속되십시요.  왜 여러분의 이웃을 다 죽여버리는 그런 권위에 자꾸 소속되고 그곳에 자꾸 의지하려 하십니까?? 
선거가 하기 싫으십니까??  내가 찍던 말던 바뀌는건 없다구요??   당신은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곤 하지만 내가 봤을땐 당신은 이 사회라고 하는 거대한 권위에 기대려고 하는 사람일뿐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왜 여러분들은 자유에서 도망가려 하십니까??  당장 겉으로 보이는 압박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워 지는겁니까??  그 이전에 당신의 내면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선 왜 돌아보지 않는겁니까???  억압에서 벗어날려고 하지 마십시요.  억압에서 벗어나본들 결국 또다른 억압이 기다리고있을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하는겁니다.  어디에 소속되고 싶으십니까??  권위에 기대지 마십시요.  여러분의 이웃에게 기대십시요.  오늘날 이 사회에서 우리가 적극적인 자유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연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틀전 뉴스를 보며 무슨생각이 드셨습니까??  나의 일이 아니라구요??  지금 당장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 일이 영원히 나를 피해갈 수는 없는겁니다. 


큐브라는 영화를 다들 아실겁니다.  당장 죽음이 도사리는 방안에서 경쟁을 통해 내 동료를 죽여버리고 탈출하면 그 큐브라는 거대한 구조체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있습니까??  제레미 벤담.  이사람이 구상한 아주 독특한 감옥이 하나 있는데 바로 파놉티콘입니다.  감옥구조는 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 감시탑이 존재하고 이 감시탑에서 빛이 나와 양 사방의 죄수들을 감시하는 형태인데, 이 감옥의 특징은 죄수들의 입장에선 감시탑을 볼수가 없습니다.  항상 빛이 있으니깐요.  거기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형태이며 이런식의 감옥시스템이 멋진게 무엇이냐면 죄수는 자기 스스로 권력에 길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감시탑에 아무도 없더라도 죄수들은 항상 저 감시탑에 복종하게 되는것이지요.

현대사회는 거대한 큐브이자 거대한 파놉티콘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권력에 훈육된채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려 하고 주어진 소극적 자유에 만족하고 있는 꼴입니다.  그리고 그 소극적 자유를 마치 전부인양...   이면에 숨어있는 진정한 억압은 보지 않으려하는채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이 정말 자유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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