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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2008), 전쟁이 보여주는 3차원적 기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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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2008), 전쟁이 보여주는 3차원적 기표

유쾌한 인문학 2010. 4. 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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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Hurt Locker)
08년도에 개봉한 영화인데 이제서야 수입되었다.  상을 받았다는 이유가 수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것으로 판단된다.  감독은 캐서린 비글로우이며 배경은 이라크 전쟁이다.  이 감독 예전에도 한번 전쟁 영화를 찍은적이 있는데 그 작품은 K-16이라는 잠수함 영화이다.  그 작품도 나름 괜찮았었는데 이번에 새로 내놓은 허트 로커는 여러가지 면에서 아주 진일보한 양상을 보여주는듯하다.  아마 비글로우 감독 인생에서 이 작품은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다분하다고 볼 수 있겠다.


Copyright (c) Summit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정적인 긴장감과 정보제공의 문제
서사는 대단히 단순한데 그 단순함을 풀어내는 방법이 아주 기가막히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긴장감이 정말 장난 아니다.  뭔가 대단한 액션이나 유치한 총싸움을 나열하는 것도 아닌데 정적인 긴장감이 가히 압권이다.  이러한 긴장감을 극한으로 내비치기 위해서 캐서린은 긴장과 완화 구조를 아주 잘 활용하게 된다.  정적인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아세웠다가 갑자기 확 풀어버리고 또 다시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다가 다시 확 풀어버리는 식인데 이러한 연출이 정말 세련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이러한 매우 정적인 상태에서의 긴장감을 영상으로 끌어내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은 말이 쉽지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정적인 긴장감을 던져주는 방식이 대단히 인상깊은데 일단 어떤 상황이 던져졌을때 그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은 극중 캐릭터나 관객이나 동일하게 주어진다.  즉 어느곳에 폭탄이 존재하는지 그 폭탄은 어떻게 설치되어있는지 어느곳에서 누가 그들을 바라보며 언제 기폭장치를 누를지 전혀 모르는 한정된 사실 정보를 캐릭터와 관객이 같이 공유하게 된다.

그러면서 캐릭터와 관객이 똑같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정보가 한가지 있으니 폭탄이 터지면 헬멧말고는 남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과에 대한 완벽한 이해이다.  즉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한한채 결과에 대한 정보는 완벽하게 제공해버리는 형식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캐릭터와 완벽한 일체감을 이룰 수 있게 되며 그 일체감에서 정적인 긴장감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보제공의 문제와 더불어 배우들의 상당한 연기력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부분에 대해선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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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보여주는 3차원적 기표
이라크 전쟁 영화가 내가 본게 총 3개인가?  그런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꽤나 많은 영화들이 존재할 것이다.  어디 이라크뿐이겠는가.  20세기에 들어와 등장한 수많은 전쟁들을 대상으로 많은 영화들이 끊도 없이 만들어졌고 만들어질 것이다.  사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탐구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이라는 단 하나의 상황에 대한 본질은 사실 정확히 직시하는것이 불가능하다고 볼 정도로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기도 하니 말이다.  뭐 혹자는 이라크 전쟁을 놓고 석유전쟁이라는 식으로 아주 단순히 도식화 하여 말하곤 하는데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시각은 하나의 전쟁을 바라보는 극히 협소한 시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전쟁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단 첫째로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방법론이 존재한다.  즉 군인들 말이다.  그리고 이 군인들은 각자가 수행하는 임무에 따라서 또 다시 유화(類) 시킬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폭탄제거반이라는 군인을 전면으로 내세웠지만 또 다른 전쟁 드라마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경우는 공수단을 전면으로 내세우게 된다.  여기에 한가지 측면이 더 들어가자면 각기 유화된 부대들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다양성이다.  인간은 성격도 다 다르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다 다를테니 말이다.  이러한 측면이 적군과 아군이라는 양쪽 상황 전부 제시될 수 있다. 

두번째로는 민간인의 측면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닌 철저하게 피해자로서의 시각.  이 시각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과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게 된다.  여기에 단순히 피해자의 시각을 넘어서 민간인들도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미군을 환영하는 무리들도 존재할 것이며 아닌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처음엔 환영하다가 자신이 피해를 입어 졸지에 원수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각들이 존재할까?  더욱이 이라크는 종교와 파벌의 문제가 얽혀들어가니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세번째로는 정치적인 측면이다.  철저하게 정치인들의 시각.  정치적인 목적 또는 경제적인 목적에서 바라보는 전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로보는 전쟁이 바로 석유전쟁이라는 말로서 표현되곤 한다. 

이러한 세가지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양분되어 제시할 수 있다.  군인과 민간인의 입장에서의 시각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시각으로서 이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게 되면 전쟁이라는 상황속에서 인간이 어떠한 양상을 보여주는지에 대해서 관찰할 수 있게 되고 그렇기에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세번째 시각인 정치적인 측면은 철저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각이기에 대단히 무미건조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게 되면 그 수행원들이나 민간인들은 철저하게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한 세가지 측면을 가로, 세로, 깊이 축으로 나열하게 되면 하나의 삼차원 공간이 형성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 가지고 있는 3차원적 기표이다.  그 3차원적 기표안에서 개인은 하나의 점과 같이 떠돌아 다니게 되지만 그 개개인의 시선은 대단히 협소하기에 절대로 전체를 바라볼 수 없다.  마치 인간이 자신의 등뒤를 볼 수 없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대로 이 3차워적 기표를 전체로서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때문에 전쟁이라는 기표는 대단히 환상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그 밑을 흐르는 기의는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3차원적 기표안에 존재하는 개인이라는 수천만의 점들이 가지고 있는 기의는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측면때문에 수많은 전쟁 영화가 만들어지는것 아니겠는가?  단순히 전쟁이 보여주는 폭력에 집중하여 액션 활극을 만들어버리는 감독들도 존재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의 인간적 면모에 집중하는 영화들도 존재하고, 민간인들의 고통에 집중하는 영화도 존재하며, 전쟁이 발생하게 된 정치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무엇이 되었건 이 각각의 영화들은 전부 전쟁이라는 본질을 담아낼 수는 없고 하나의 시각만을 제시할뿐이다.  영화라는 것 자체도 인간이 만든것이기에 협소한 생물학적 인간의 시각만큼 밖에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이 제시된 시각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보편적 설득력을 부여하느냐가 아니겠는가?  즉 전쟁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 본성에 대한 보편성의 획득과 그 보편성의 일상으로의 확대와 그 일치감.  바로 이 지점을 잘 표현해내느냐 못내느냐에 따라서 그 영화의 예술성이 결정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대단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극중 주인공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위들을 통해서 말이다.


주인공의 존재적 기표(스포일러)
극중 주인공이 보여주는 태도들이 상당히 재미있다.  일단 영화는 시작하면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제시하게 된다.  30일전 20일전 이런식으로 말이다.  그런 상황속에서 주인공들은 매일매일 폭탄물을 해체한다.  주인공인 해체요원은 자신이 해체한 폭탄물의 기관을 모으고 있다.  800여개가 넘는 폭탄물을 해체하고 살아남은 그는 최고중에 최고인 해체요원이다.  그는 임무를 행함에 있어서 상당히 위험한 태도를 수시로 내보인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자신을 툭하면 내던져버리며 어떻게 보면 은근히 즐기는듯한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끊임없이 모국으로 돌아갈 날짜들이 제시된다.

주인공은 뭐라고 해야 할까.  폭탄물 제거라는 어떠한 하나의 존재의미에 갇혀버린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면에서 보면 일종의 쾌락이라고 볼수도 있겠고 중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든 800여개의 폭탄물을 제거하면서 그는 완벽하게 전쟁이라는 환상적 기표에 포획되어버린다.  극한의 상황에 포획된 사람은 누구나 안정된 삶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된다.  이러한 회귀의 욕망이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자막화되어 숫자로서 제시된다.  30일전 20일전..   이러한 안정된 삶으로의 회귀적 욕망은 흑인 병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극한의 두려움에 몰리게 된 그는 아이를 갖고 싶다면서 그 전쟁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하지만 해체 요원인 주인공은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가 느끼는 전쟁에의 중독과 그 속에서의 쾌락적 측면 그리고 또 한편으로 꿈꾸는 안정감에 대한 기표들.  그 사이에서 그의 주체성은 사라져가게 된다.  이러한 전쟁속에서의 쾌락과 안정을 향한 모순된 욕망과 그사이에 서있는 군인이라는 측면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긴장과 이완의 구조를 통해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긴장속에서 쾌락이 도출되고 그 쾌락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 이완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솟구쳐 오르게 되고 그다음 긴장이 다가올때 영화는 20일전 따위의 자막을 다시금 내보인다.  

이러한 기표들 사이에서 군인들의 주체성은 아주 모호해진다.  극중 주인공인 해체요원은 뭐랄까.  살아있는것도 아닌 죽은것도 아닌 경계의 무너짐 속에서 서있는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목적 그 자체도 잃어버리게 된다.  왜 해체하는가?  모른다.  어느순간 그에게 있어서 유의미한 것은 해체라는 행위 그 자체만이 남아있을뿐이다.  그리고 그 해체과정속에서 또 다시 자막이 제공된다.  365일전..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전쟁을 수행하는 인간을 이루고 있는 외피의 경계가 무너진다는것에 존재한다.  인간이 하나의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경계의 설정이 필요하게 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은 분명히 구분되던 수많은 경계선들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경계의 무너짐은 가치의 무너짐으로 나아가게 되고 그 속에서 살아숨쉬는 인간은 그 스스로의 경계를 무너뜨리게 된다. 
전쟁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참혹함이란 바로 이런 측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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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08년도에 개봉되고 아마존에서는 이미 DVD에 이어 블루레이까지 판매하고 있는 작품이 이제서야 국내에 개봉되었다.  뭐 사실 이런 일이 한두번인가.  전국민의 공통된 취미가 영화보기이지만 정작 그 영화들은 상당히 질떨어지며 그나마 보는 영화들 똑같은 작품을 다같이 봐야하는 기형적 구조로 인한 다양성의 부재.  영화를 수입해오는 기준 역시 외인들의 상 수여 여부에 많이 판가름되는 상황.  여기에 턱없이 부족한 컨텐츠로 인해 불법을 조장하는 상황을 보자면 우수한 IT 인프라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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