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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믹(1997), 인간의 내면과 아브젝시옹 본문

영 화/90's 영화

미믹(1997), 인간의 내면과 아브젝시옹

유쾌한 인문학 2010. 10. 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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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믹(Mimic)
나에게 있어 참 뜻깊은 영화이다.  어린시절 우뢰매를 처음 극장에서 본 이후 최초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바로 미믹이다.  워낙에 촌구석에서만 주로 살다보니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이기라는 것을 그렇게 많이 누려보지 못했던 어린시절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두번째 영화가 된다.  아마 이작품은 대부분 기억을 하실거라 예상된다.  아무나 붙잡고 미믹 아냐고 물어보면 바퀴벌레?  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길예르모 감독은 멕시코 출신으로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란것으로 알려져있다.  영화에 입문하게 된 이후 그의 첫작품인 93년 크로노스라는 뱀파이어 영화가 상당한 평가를 받으며 칸에서 상을 수상하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길예르모 감독이 거의 듣보잡에 가까울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는 꽤나 많이 소개되었다.  판의미로, 헬보이, 블레이드2 정도를 들 수 있겠는데 판의 미로는 흥행에 실패한 영화이고 흥행에 성공한 두 영화는 헐리웃 시스템에 걸친 영화인지라 감독 역량이 평가절하 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샤말란 감독과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뭐 그래봤자 국내적 시각에 불과한 것이니 큰 의미는 없겠다. 

미믹이라는 영화는 그의 두번째 영화이자 첫번째 작품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헐리웃 진출작이 된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문제가 많은 작품이다.  길예르모 감독이 가지고 있는 작가적 성향과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당시 제작자들이 수시로 찾아와 감시하고 간섭하였고 시나리오 자체도 전형적인 헐리웃 공식을 따르기를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작품은 상당한 걸작이 될수있었지만 뭔가 애매해져버린 작품으로 남게 된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바퀴벌레들이 창궐하면서 이상한 병을 퍼트려 아이들이 끊임없이 죽어나가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어느 곤충학자가 유전자 조작을 하여 사마귀와 흰개미를 합친 생물체를 만들어 바퀴벌레를 박멸하게 된다.  원래 계획은 바퀴벌레를 다 죽인 이후 그 생명체는 자살 유전자로 인해 스스로 사라지게 하는거였지만 그들은 그만 살아남은채 빠르게 진화하게 되어 사람크기로 커져버린채 사람을 그들의 천적으로 여겨 발달하게 된다.  이에 이 괴물들을 처치한다는 뭐 그런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인간의 내면과 아브젝시옹
아직까진 초기작품이라 그런지 다양한 상징적 나열이 눈에 띄인다.  특히 기독교 상징을 많이 차용하게 되는데 영화내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성당 장면이라던지 극중 괴물의 이름이 '유다'라는 것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인상깊은건 유다라는 극중 사마귀와 흰개미의 조합으로서의 괴물의 모습이다.  위의 스샷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 부분이 유다의 얼굴을 이루게 되는데 사람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이는 사람을 천적으로 삼았기에 사람을 닮아가는 진화적 과정이라는 설정이다.  중요한건 저 사람의 얼굴을 한 저것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진정한 괴물로서의 곤충의 면모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부분이 아주 흥미로운 설정이다.  인간의 겉을 한채 공격적이면서 뭔가 더러운 곤충의 내면.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억압된 공격성 따위로 바라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설정은 영화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더러운 것들과 만나면서 최고의 궁극을 이루게 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아주 어둡고 더럽다.  똥같은 것들도 대놓고 드러내고 곤충이 죽으면서 내놓는 각종 분비물들, 죽은 곤충이 발견되는 위치도 하수처리장.  더욱이 극중 괴물 그 자체도 사마귀와 흰개미의 조합이라고는 하지만 생긴것만 보면 그냥 바퀴벌레가 연상될 정도로 더러운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더러운 것들은 인간이 보여주는 본연적 경계설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행하게 되는 하나의 행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경계를 설정하여 나라는 인간의 자아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중의 주체라는 말로서 표현이 가능하다.  이러한 경계는 보통 라캉 정신분석학에서는 거울단계에서 최초로 제시된다. 

거울단계는 1세 전후의 어린아이에게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주의할 부분은 어린아이와 거울이라는 비유는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지 진짜 거울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거울을 보고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보게 되면 어떤 현상을 보이게 될까?  흔히 동물들이 그 이미지가 자신인 것으로 생각을 못하듯이 어린아이 역시 처음엔 그 이미지를 혼동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자신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거울을 보면서 아이는 자신이 하나의 전체로서의 완전한 형태를 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1세 전후이므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의 신체를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적 경험과 거울속의 완벽한 이미지는 서로 상충하게 된다. 
이때 아이는 자신의 불완전한 신체를 자신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거울속의 이미지를 자신이라 생각하고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 동일시의 과정은 매우 중요한데 이 동일시를 통하여 아이는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에 매료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는 불완전한 자신보다 완전한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니 소외적일 수 밖에 없다.  즉 거울 속의 완전한 이미지를 자신으로 여기면서 불완전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추방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테바는 이 거울단계 이전에도 나와 타자와의 경계를 설정하는 행위가 존재하는바 이를 두고 아브젝시옹이라고 칭하게 된다.  아브젝트는 우리가 혐오하고 거부하며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것들로서 '나'라는 주체를 형성함에 있어서 사회가 부정적인 것으로 명명한 것들을 추방하여 그것들과의 경계를 형성하게 되고 우리 주변을 끊임없이 배회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이러한 추방된 것들은 대부분 똥이나 시체 같은 것들로 표현되는바 이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똥이나 분비물 등의 수많은 더러운 것들은 미숙한 인간의 상징인 유다를 통해 드러난 억압된 것과 인간 표피의 경계를 표현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와 소통가능성
또 한가지 인상 깊은 부분은 극중 자폐증 아이가 보여주는 일련의 양상이다.  그 아이는 극중 괴물인 유다가 내는 소리를 숟가락 같은걸로 흉내내면서 괴물들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는 곳곳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치하여 보여주게 된다.  지하철 내부에서 살아가는 극 빈곤층과 곤충을 채집하여 극중 여주인공에게 팔던 빈곤층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양자들을 제시하게 되고 그 극점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자폐증 아이이다. 

그리고 이 자폐증 아이와 극중 괴물인 유다와의 관계를 통해 어떤 소통가능성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발전하지 못한채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위에서 언급한 영화 제작자와의 마찰로 인해 생겨난 부분이다.  이 부분때문에 영화가 공중으로 붕 떠버리게 된다.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랄까?  과연 길예르모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 제작자들이 간섭하지 않았다면 위에서 언급한 똥들과 함께 어떠한 양상으로 영화가 진행되었을까?  정말 궁금하지만 영화는 결국 개판으로 만들어져 개봉되게 되고 저주받은 미완의 완성으로 남게 된다. 

사실 이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유다가 가지고 있는 경계설정과 억압된 폭력성으로서의 상징 그리고 곳곳에서 등장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모습들 그리고 이 둘의 화해적 양상.  이것들을 잘생각하고 조합해보면 길예르모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지는 얄팍하게나마 짐작이 되긴한다.  어쨌든 이부분이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마무리
어쨌든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이다.  장르영화로서도 아주 만족스럽고 길예르모 감독의 작품 전반으로 드러나는 어떤 어둠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그런것들도 잘드러나는 영화이다.  역시 아쉬운건 제작사들의 횡포로 인해 망작이 되버렸다는 점이 아닐련지.  이 사건때문에 길예르모 감독은 악을 품었는지 두번다시는 그 제작사와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다음 작품은 곧바로 헐리웃과 결별한채 다시 자신의 작가적 작품으로 돌아가게 되는바 그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악마의 등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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