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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2004), 가면 뒤에 숨겨진 욕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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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2004), 가면 뒤에 숨겨진 욕망

유쾌한 인문학 2010. 10. 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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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이 작품은 가스롱 르루(Gaston Leroux)가 1910년에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 자체가 어느정도의 명성을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훗날 작곡가 앤드루 L. 웨버가 음악을 맡고 해롤드 프린스가 연출을 질리언 린이 안무를 맡아 뮤지컬로 만들게 되고 1986년 10월 런던에서 초연된다.  영화화도 꽤나 여러번 이루어졌는데 내가 아는한 5개 정도 되는 작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가장 최초의 작품은 1925년도에 무성영화로 제작된다.  본글은 2004년도에 나온 영화를 기준으로 한다. 

일단 영화가 뮤지컬이 제작된 이후에 나온 작품이기에 뮤지컬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따라서 이 작품은 사실상 뮤지컬의 영화화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화 자체도 뮤지컬의 형태를 띄게 되고 음악 역시 뮤지컬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심지어 영화내의 모든 장면들은 전부 뮤지컬에 기반을 둔다.  뮤지컬에서 표현이 생략된 부분만 새롭게 그려질뿐이다.  철저하게 뮤지컬에 기반을 둔채 만들어진 영화이다.  뭐 쉽게 말해서 뮤지컬을 극단적으로 대중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팬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팬덤이다.  무언가 대단히 뒤틀려있는 인물인데 이 인물에 대해서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작품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덤은 노틀담 드 파리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원래부터 선천적 기형으로 태어난 음악에 대단한 재능을 보유한 천재.  하지만 그의 기이한 외모때문에 오페라 하우스의 지하에 있는 호수에서 살게 되고 그곳에서 크리스틴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가게 된다.  크리스틴을 도와 프리마돈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이 살던 호수로 초대를 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자신이 크리스틴을 사랑하는것만큼 크리스틴도 자신을 사랑해줄까?  라는 의문은 자신의 외모에서 비롯된 불확신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에 그의 욕망은 점점 뒤틀려나간다. 

사실 팬덤의 입장에선 절대적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인간이 가장 외롭고 소외되는 순간은 자신에게 절대적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부터 버림받았을때이다.  즉 부모로부터의 버림 그중에서도 어머니로부터의 버림받음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유아시절 어머니와의 유대와 절대적 이자관계의 구축은 자아의 형성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관계를 통해서 파편화된 신체의 경험과 그 공격성을 억압시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아가 구축된다.  그리고 그 이후 상징적 아버지의 존재를 통해 이자관계는 다자관계로 확장되며 사회 전반에 자신의 자리를 위치시키고 그로 인해 주체가 형성된다. 

하지만 이 최초 단계부터 뒤틀리기 시작하면 파편화된 신체의 경험이 일체화되지 않게 되고 그 신체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개별 신체에 대한 혐오와 공격성이 그대로 의식에 남게 된다.  또한 완전한 사랑을 통한 나르시즘의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한 자아의 형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보니 자기 혐오자체는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고 나르시즘의 경험이 없기에 상징적 아버지를 통한 사회전반의 주체 형성 또한 불가능해진다.  이 모든 과정들이 생략된채 성인이 된 팬덤은 주체가 되는 과정을 거친적이 없었기에 그 어느 곳에도 어울릴 수 없으며 그의 의식세계는 억압되지 못한 근원적 공격성이 도사리고 있는 상태이다.  결국 자신의 기이한 얼굴이 문제라기보다는 버림받은 경험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크리스틴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녀를 도와주게 된다.  팬덤이 크리스틴을 통해서 원하는 것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 인간이라면 가질 수 밖에 없는 절대적 사랑에 대한 본능.  바로 그것이다.  자아와 주체 형성과정에서 최초로 다가오는 절대적 사랑에 대한 갈망은 동물로서의 인간 본연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라울이 존재한다.  라울을 보면 안그래도 부족한 자신이 더욱 크게 느껴지게 되고 이에 팸덤의 자기혐오는 더욱 강해지게 된다.  이 혐오에서 드러나는 현상은 크게 두가지로 나타난다.  즉 내부적 공격과 외부적 공격이다.  내부적 공격은 보통 자기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나아가며 자해와 같은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지만 외부적 공격은 말 그대로 외부요인에게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식이다.  팬덤의 경우는 두가지가 섞여서 등장하는바 자신을 향한 공격이 외부로 돌려져 나타나게 된다.  즉 외부의 사람들을 망가트림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더 깊은 소외로 빠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어가는 현상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크리스틴의 관심과 사랑을 불러올 수는 없는 것이고 되려 자신은 돌아올 수 없는 소외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팬덤의 자기 혐오가 극단으로 치닫을때 팬덤은 강압적으로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덫을 놓게 되고 바로 그때 크리스틴은 절대적 이해와 포용을 보여주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극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키스씬이다.   극단적인 자기 혐오의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절대적 이해와 사랑말곤 방법이 없다.  팬덤은 그것을 얻게 되었고 이에 자기 혐오의 상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오페라하우스를 떠나게 된다.  물론 크리스틴의 키스가 팬덤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절대적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은것도 아니고 나르시즘의 경험 역시 여전히 부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어디에선가 크리스틴의 주변을 멤돌며 계속 지켜보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음악의 천사와 유령
크리스틴은 어린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극장으로 들어오게된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어린시절에 대한 부분이 대부분 생략되어있지만 어느 시점에 팬덤을 만나게 되고 목소리를 통해서 레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팬덤에게서 음악을 배운 것이다.  크리스틴 입장에서야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오직 목소리로만 자신을 가르치니 음악의 천사라고 여길만 하겠다.  더욱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천사가 돌봐줄것이라고 말을 남겼으니 음악의 천사라는 확신은 더욱 커졌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팬덤의 궁전에서 그의 얼굴을 보게 되고 이에 불같이 화내는 팬덤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졸지에 천사에서 유령으로 바라보게 된다.  쉽게 말해서 크리스틴의 입장에서 팬덤은 천사이자 유령인 양가적 성격을 띈다는 것이다.  팬덤이 겉으로 보여주는 집착과 두려운 행동들을 바라보자면 그는 자신을 지배하려 들고 자신을 소유하려드는 유령이자 두려움의 대상일뿐이다.  한편으로 팬덤의 내면을 정확히 이해하는 양상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이다. 

팬덤이 뒤틀린 인간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의 목소리를 통해서 음악에 대한 열망과 사랑 그리고 자신을 세상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소망 즉 자신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욕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 따뜻함이며 차가운 지하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팬덤의 자기 혐오는 극에 다달은 상태이고 그러한 자기 혐오에서 비롯된 어떤 자해적 공격성이 외부로 돌려지게 된 상태이다.  즉 타인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트린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자기 혐오는 더욱 심해지고 말이다.

크리스틴은 이러한 팬덤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는듯하며 그로인해 어떤 연민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죽이지 말라고 라울을 말리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오페라 씬에서 둘의 공연이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둘의 노래는 자기 혐오와 연민이 만나 서로 대화를 하게 된다.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리스틴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팬덤의 노래 가사들과 그런 그에게 호응하는 듯한 크리스틴의 노래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가면 뒤에 숨겨진 욕망
가면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문명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품이다.  모든 문명권에서 가면이 나타난다는 것은 인류 공통의 어떤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면은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서 사용한다.  보통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데 겉으로 드러난 가면은 악마같은 모습을 취할때도 있고 조커와 같이 한없이 웃는 모습을 취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그 안의 본질은 확인하기 힘들고 대부분의 가면은 그안의 본질과 반대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삐에로의 웃음을 보고 섬뜻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팬덤에게 있어 가면은 이중으로 나타나게 된다.  첫째는 단순히 자신의 흉악한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다.  특이한 것은 오직 흉악한 얼굴을 가리기 위한것이 목적이라면 그가 굳이 지하에서 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도 안보는데 홀로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웃기는 일 아닌가?  그렇기에 그의 가면은 두번째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팬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내용은 위에서 이미 다 언급하였고 그러한 욕망을 억압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자기 혐오의 감정을 억압하고 버텨보려하지만 그만 크리스틴이 그의 가면을 벗겨 그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때 처음 그의 가면이 벗겨지게 된다. 

이 순간 그의 자기 혐오는 더욱 커지게 되고 억압된 것은 솟아오르고 분출된다.  한번 생겨난 균열은 점점 벌어지게 되고 어느순간 그의 가면은 그의 욕망을 가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시점에 팬덤은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진채 자신의 욕망을 정면으로 드러내기에 이른다.  라울을 사로잡은채 크리스틴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순간 그는 가면을 벗어던진 상태이다.  즉 모든 욕망이 바깥으로 쏟아져나오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자기 혐오와 욕망이 분출되고 있을때 그것을 다시 억누르는 것은 크리스틴의 키스이다.  그 말 없는 한번의 키스는 팬덤에게 수많은 말을 던지게 된다.  결국 팬덤은 크리스틴을 보내주고 자신의 얼굴을 비추던 거울을 깨뜨린후 가면을 뒤로한채 떠나게 된다.


마무리
나름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지만 사실 이런식의 영화는 큰 의미가 없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도록 노력을 해야지 기존의 명성에 묻어가려는 태도는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존심마저 버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몰지각한 태도라고 볼 수 있겠다.  단순히 흥행이 목표였고 뮤지컬의 재미를 그대로 가져오는게 주목적이었다면 성공하였다고 평해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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