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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정신분석, 상상계과 자아의 형성 본문

인 문/정신분석

라캉 정신분석, 상상계과 자아의 형성

유쾌한 인문학 2011. 3. 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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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바로 나 이외의 다른 것의 대립이 전제되어야한다.  이른바 테제와 안티테제의 대립이다.  테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티테제가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변증법의 단계를 통해서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이러한 최초의 안티테제의 등장은 1세 전후의 유아시절에 나타난다고 한다.  이를 두고 거울단계라고 표현하며 이 단계를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고 한다.  그럼 거울 단계이전의 인간은 어떠한가?  거울 단계에 돌입하기 전의 유아는 원억압으로서의 파편화된 자신의 환상을 가진다고 한다.  이를 두고 원초적 환상이라 부른다.


거울단계
거울단계는 1세 전후의 어린아이에게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주의할 부분은 어린아이와 거울이라는 비유는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지 진짜 거울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거울을 보고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보게 되면 어떤 현상을 보이게 될까?  흔히 동물들이 그 이미지가 자신인 것으로 생각을 못하듯이 어린아이 역시 처음엔 그 이미지를 혼동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자신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거울을 보면서 아이는 자신이 하나의 전체로서의 완전한 형태를 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1세 전후이므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의 신체를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적 경험과 거울속의 완벽한 이미지는 서로 상충하게 된다.

이때 아이는 자신의 불완전한 신체를 자신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거울속의 이미지를 자신이라 생각하고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이 동일시의 과정은 매우 중요한데 이 동일시를 통하여 아이는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에 매료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는 결국 이미지와 자신을 햇갈리게 함으로 소외적이라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자신보다 완전한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니 소외적일 수 밖에 없다.  즉 거울 속의 완전한 이미지를 자신으로 여기면서 불완전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추방당하는 것이다.


나르시즘
이러한 매료와 소외의 사이에서 지독한 나르시즘이 발생하게 된다.  즉 나르시즘은 이미지에 매료된 자신의 모습이라 볼 수 있는 것이고 만약 자신의 이미지를 통한 자기 도취가 사라지는 순간에는 다시 억압된 무의식의 자신의 신체에 대한 파편화된 소외가 떠오르며 자신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나르시즘은 도취와 소외의 중간에 서있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완전한 이미지의 동일시를 통한 완전한 존재로서의 인식은 결국 불완전한 자신이 타자가 되는 대가를 치르면서 얻는 것이다.  자아는 이러한 완전한 이미지에 대한 소외와 매료의 과정에서 생겨난다.  자아는 이미지의 효과들로서 이미지가 조직하고 구성하는 특성에 의해 형성된다.  이것이 상상계의 기능이다.  자아는 결국 환영의 이미지에 근거하는 것이고 이러한 완전한 이미지를 자신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다. 

완전한 이미지는 주체, 파편화된 자신의 신체는 자신이라 칭했을때 주체와 자신은 경쟁의 구도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주체와 자신과의 경쟁관계는 1차적 내부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확장되면 2차적 갈등.  즉 타자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자신이 경쟁하게 된다.  테제는 안티테제에 의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므로 결국 타자의 인식 즉 타자의 이미지는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이는 나와 같은 이미지가 매개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자아는 타인 즉 외부세계를 통해 형성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여기에서 데카르트의 코키토적 사고방식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완전한 나의 세상
이러한 상상계적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다.  완벽한 자신의 이미지를 자신으로 동일시 하였으니 무엇하나 내마음대로 안될 이유가 없는 곳이다.  이는 이미지와 자신이라는 이자적 구조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그러한가?  세상은 이자적 구조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자적 구조이며 그속에는 법과 원칙이 존재하며 이 모든것들을 총괄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결국 사람은 이자적 구조에서 넘어 현실의 상징적 세계로 나아가야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것이 바로 언어의 기능이다.  상징적 언어를 익히면서 인간은 체험적 상상을 무의식으로 억압하게 되고 현실의 사회생활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상징계라고 한다. 


http://nermic.tistory.com/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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