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에 닥친 빈곤 - 소비적 읽기 문화


약 천년 전 로마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별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 반한 로마인들은 그것에 비너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이 별은 바로 금성이다. 지구라는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한 인간은 생존에 가장 적합한 공간에서 저 별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생각하고, 불과 오십년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 즉 인간의 생존 환경에 적합한 관점에서 저곳은 공룡이 살고 있는 열대우림으로 상상해왔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샛별은 표면온도 500도에 육박하는 불지옥에 가까운 곳이며 이는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이미 되어있던 사실이다.

이는 인간의 인식과 현실사이의 괴리를 잘 보여주는 한 사건이다.  이렇듯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한계에 놓이게 된다. 한정된 감각기관을 통한 지각능력, 너무나도 거대한 시공 속에서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인식 영역 밖의 일들까지. 어떤 면에서 보면 지독한 한계와 구조 속에 규정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이러한 뚜렷한 한계 속에서 인간이 이러한 거대한 문명을 이루어낸 힘 예컨대 저 금성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된 근간은 무엇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앎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것을 후세에 전달하는 기록문화. 바로 이것에 존재한다. 넓은 의미의 앎에 대한 열망이란 결국 생존환경의 진보에 대한 열망이라 보아야할 것이다. 농사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별들을 관찰하고 물을 관리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치수를 연구한다. 인간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무형의 어떤 것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경외와 공포를 이끌어내기도 하며, 이러한 모든 것들은 기록되어 후세에 남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문화는 읽기문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읽는다는 행위는 어떤 사태에 대한 타인과의 생각의 나눔이다. 이러한 생각의 나눔은 시공을 초월하여 이루어지게 되고 그러한 시공의 초월성이야 말로 인간이 이룩한 가장 큰 위대함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경제규모의 거대함과 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발달된 교통수단으로 인하여 사실 그 전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질적 양적 규모가 커지게 되고 그와 동시에 각 영역의 세분화를 통해 고도의 전문성이 확보된다. 아주 작게 쪼개진 전문영역은 극도로 다양해지고 파편화되는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데 인간의 한정된 능력을 세분화된 영역 내에 집중하여 최고의 효과를 끌어내는 장점과 반대로 영역을 벗어난 큰 틀로서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단점이 그것이다.

세분화된 것에 집중하되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새로운 생각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확인이다. 이러한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과 이에 기반한 생각의 발견은 총체적 교양이라고 칭할 수 있으며, 이는 전문영역에서의 일이 그 영역을 벗어나 전체 속에 던져졌을 때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을 하고 다양한 예측 불가능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까? 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지극히 무거운 문제에 대한 의심으로 정의할 수 있다. 실제로 인류의 많은 유산들은 그것과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분야의 진일보에서 생각을 얻어내 발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2차 대전과 같은 파괴적 사태에서 다른 영역의 또 다른 관점을 이끌어내는 경우도 상당하며 이러한 파괴적 사태는 굳게 믿어왔던 이성에 대한 확신과 진보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것이니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듯 교양이라고 하는 단어에 기존의 전형적 생각과는 조금 다른 정의를 부여했을 때 완벽하게 다르고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현재 한국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상상력이나 경쟁력 따위의 경제적 담론들과도 일치하게 된다. 멀리 볼 것 없이 핸드폰 그중 미국 애플사의 핸드폰이 국내에 도입됐을 때 그것이 한국사회에 던진 파장은 우리사회를 이루고 있는 근간에 대한 질문이었다. 서열, 수직적 조직, 폐쇄적 문화가 가지고 있는 명백한 한계 그로 인한 창의력 부재와 경쟁력 저하 그리고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획일적이고 무기력한 분위기까지. 작은 핸드폰 하나가 우리사회에 던진 것은 총체적 인식능력의 부재와 교양능력의 완벽한 붕괴에 대한 경고이다. 기계는 발전하고 속도도 빨라지고 소프트웨어도 발전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하는 것에 그친다. 철저한 소비 지향적 태도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을 하고 고등 교육을 이수하지만 이는 명목뿐인 수치에 불과하다. 고등학문에서 학문은 사라지고 철저하게 소비위주의 지식만 쌓아올리는 주도적 현실은 대학을 그 자체로서 소비적 지식의 전당으로 탈바꿈시키게 된다.

한국인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활자를 읽지만 지극히 획일적인 읽기에 그친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똑같은 활자만 읽어 들어가고 그것을 가지고 경쟁을 한다. 오바마는 한국 학생들은 공부만한다고 경계하지만 그 실상은 소비위주의 지식 쌓아올리기에 그친다는 걸 알고 말한 걸까? 이러한 획일적 읽기 문화에 대한 비판의 적극적 형성이 없다는 것은 굉장한 비극이다. 더욱이 획일적 읽기 문화는 비판적 읽기와 토론 문화에 대한 상실을 가져오게 되며 더 나아가 전체를 바라보는 총체적 교양능력의 부재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결국 총체적 소통능력의 상실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획일적 읽기문화는 내 곁에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넘어 시공을 초월한 소통능력의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는 인간이 이룩한 가장 큰 위대함을 스스로 차버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문화의 상실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가장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역설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빈곤은 비단 경제적인 측면의 담론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정신적인 부분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OECD 내에서 압도적 1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살률 등에서 정신문화의 빈곤과 파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본질을 대체한 자본으로 지칭되는 허상의 욕망이 가져온 사태로서 이러한 욕망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허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욕망이 적당히 발현될 때는 긍정적인 측면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가치가 되어버렸을 때는 이렇듯 심각한 부작용을 드러내게 된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한 정신문화를 구축하였던 이 땅에서 이정도의 가치상실과 붕괴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결국 소통능력의 상실에서 비롯된 본질의 가치전도현상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풍요속의 빈곤이며 이는 풍요의 본질에 대한 상실이다. 


  1. 왕비마마

    | 2011.11.14 07:35 | PERMALINK | EDIT | REPLY |


    어렵다.... ^^;;;
    아구...이러시면 곤란한데....

    울 용짱님~
    행복한 한 주 되셔요~ ^^

  2. Lipp

    | 2011.11.14 21:45 | PERMALINK | EDIT | REPLY |

    요즘 자주 글 올리시네요. ^^

    전체적으로 공감하는 글이에요.
    지식을 쌓는 행위가 본질을 떠난다면 허영이겠죠..
    정신문화가 결여된 풍요속의 빈곤사회에 사는 우리네들 .. 씁쓸합니다.
    저도 그중 한사람일지 몰라요 ..;;; 음 ...

  3. 눈송

    | 2011.11.17 21:25 | PERMALINK | EDIT | REPLY |

    용짱님 올만에 인사드립니다.

    오로지 천민자본주의라고 피상적으로 사회비판을 해왔던게 전부인데

    좀 더 구체적인 현상을 볼 수 있게 된듯 하네요

    좋은 글 갘사 합니다

  4. 안용태의 유쾌한 인문학

    | 2011.11.18 00:53 신고 | PERMALINK | EDIT |

    마지막으로 오셨던게... 일제 근대화였나요?
    이글은 십만원준다면서 요청받은건데 거부때리는 바람에 여기에 올라오게 됐네요. 음... 흑...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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