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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을 통해보는 저작권과 현대적 예술

유쾌한 인문학 2010. 12. 1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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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요즘 저작권으로 참 말이 많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저작권과 관련하여 무식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저작권과 관련해선 까놓고 전국민이 범죄자이니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시디나 DVD는 다 돈주고 사지만 컴퓨터 프로그램과 티비 방송은 불법으로 쓰는게 몇개 있다.  

저작권 문제가 자꾸 불거지는 이유는 역시 하나.  무형의 재산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비물질적 재산에 대해서 아이들이나 어르신에게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은 그래도 음반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의 재산성에 대해서는 명확히 인식을 하고 있는듯하다.  아무래도 얘네들은 손에 쥘 수 있는 물건도 있고 거기에 이를 생산하는 자들이 거대자본이기에 그 권리대상자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가 되는건 거대자본에 의해 생산되지 않는 사진이나 글 같은 것들이다.  요즘보면 참 사진 전문가들이 많아진것 같다.  카메라의 보급이 급속히 빨라지면서 찍혀지는 사진도 많고 이런 사진들은 인화되기 보단 인터넷에 올려져 소비되는 경향이 많다.  안그래도 지속적인 복제가 가능한 작품인 사진이 인터넷과 만나면서 그 복제성이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되버렸다고나 할까??  이쯤되면 어떤게 누구건지 알수도 없다.  

그러니 저작권은 보호해야하고 기술적 한계점도 뚜렷하니 결국 광범위한 제재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광범위한 저작권 제재는 기술복제시대의 현대적 예술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어버리는 단점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게 뭘까....  여러분도 다 아시는건데..   그걸 알아보겠다.


아우라의 상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창출된 예술이 크게 두가지 존재한다.  그건 바로 사진과 영화.  이는 카메라라는 물건을 가지고 무언가를 찍어내는 기술을 사용하는 모든 예술대상을 지칭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의 특징은 무한대의 복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단하나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일 처음 인화한 사진과 두번째 인화한 사진 사이에 어떤 차별점을 부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은 아우라의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  아우라란 무엇인가?  몇일전 이에 대해 올렸었는데..  많은 분들이 완전 잘못 이해하셨다.  첫사랑 어쩌고 저쩌고는 재미있자고 갖다붙인 장치일뿐인데 거기에 집중을 다들 너무 많이 해버리셨다.  연예인의 후광.  그건 아우라가 아니다. 

이 아우라라는 것을 잘 뜯어보면 어떤 숭배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원본.  단 하나의 원본이 만들어졌던 그 상황.  그리고 그 단하나의 원본을 멀리서 바라보며 느끼는 단하나의 경험.  파라마님이 말하길 유럽에 가서 직접 최후의 만찬을 보니 숨이 막히더라는 표현을 했는데 바로 이것이다.  단 하나의 원본.  그 그림은 단 하나뿐이기에 어떤 단 하나의 상황속에서 그려졌을거다.  그리고 파라마님은 그 자리에 가서 그것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만의 단 하나의 체험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상을 향한 어떤 엄청난 몰입과 숭배 및 경외를 품게 된다.  그럼 단순히 몰입과 경외만 품으면 아우라의 경험이라 칭할 수 있는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저 최후의 만찬이라는 저 그림과 내가 시선을 주고 받아야 한다.  즉 상호 교감이 필요하다.  저 최후의 만찬이라는 대상물과 나 사이에 있는 경계가 해체되어 사라지는 느낌.  저 그림도 나를 보고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그 경험.  대상과 내가 통일되고 교감하는 것.  바로 이게 아우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우라를 지니는 예술은 기술복제의 시대에 들어와 급격히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예술이 대중과의 거리를 급격히 좁히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거다.  사진 한장 찍어놓으면 여러분은 그걸 인화해서 사진첩에 넣을 수도 있고 내 싸이에 올릴 수도 있고 내 핸드폰 배경으로 넣을 수도 있다.  아주 다양한 사용방법이 존재한다.  이는 결국 예술작품과 대중의 거리를 매우 좁히게 되고 아우라를 상실한 예술작품은 숭배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전시의 대상으로서 기능을 가지게 된다. 


기술복제시대 예술의 현대적 가치
이러한 아우라의 상실을 불러온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은 재미있는 현상을 불러오는데 이를 두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전환'이라 부른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사진을 보자.  사진은 그것 자체가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숭배의 대상이 되긴 힘들지언정 어떤 정치적 도구로서 사용할 수 있다.   엄청난 살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담은 사진 같은거 말이다.  영화는 어떠한가?  이 역시 아우아를 상실한 전형적인 현대 예술이지만 어떤 비판기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어디 사진과 영화뿐이겠는가?  다양한 패러디 문화도 여기에 속하고 그외 찌라시 같은 것들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는 결국 예술의 정치화이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믿는다.  결국 저작권법의 강화는 이러한 예술의 정치화 기능을 약화시키는데 큰 일조를 할 수 있다.  이제는 무슨 패러디 같은걸 할려고 해도 그 원소스를 직접 창조하고 그걸 가지고 어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건 뭐..  보아하니 "블로그는 건들지 않겠다"라고 했다지만 뭘보고 믿나?  위험하긴 매한가지인데..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규제
결국 저작권의 보호라는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 보호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아이가 가요를 부르는걸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올리는 것과 스샷 몇개 찍어 올리는걸 규제하는 건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비평 문화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나??  이런것까지 저작권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은 가짢은 법률지식 몇개 가진거 가지고 그 지식을 남용하는것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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