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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우맨(2000), 투명인간과 현대사회의 욕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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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우맨(2000), 투명인간과 현대사회의 욕망

유쾌한 인문학 2010. 2. 1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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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우맨 
폴 버호벤 감독의 13번째 영화인가?  그런걸로 알고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좀 오래된 영화인데 티비에서 자주해주는 관계상 꽤나 여러번 보게된 영화이다.  이 영화를 한 3번쯤 보게 되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속을 휘감아 돌기 시작했다.  내용은 대단히 단순한바 살아있는 생명을 투명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중인 연구소에서 그 소장이 급한 마음에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게 되고 이것이 성공하지만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그는 엄청난 광기에 휩싸이게 되고 살인을 저지르다 연구소내에서 죽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눈먼자들의 도시' 역시 비슷한 맥락의 생각인데 내가 투명인간이 되든 모든사람들이 눈이 먼채 나만 볼 수 있든 사실 크게 다를바는 없다.  다만 그 상황을 어떻게 그려내느냐의 차이점이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눈먼자들의 통해 도시내에서의 소비성의 투쟁에 대한 생각을 엿볼수 있었고 할로우맨 역시 엇비슷한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투명인간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투명인간이 된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숨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를 완벽하게 숨긴채 타인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극단적 형태의 관음증의 상징이 바로 투명인간이다.       

극중 주인공인 케빈 베이컨은 처음엔 능력있고 괜찮은 인물이었지만 투명인간이 되면서부터 점점 이상하게 변해간다.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어둠에 눈떴다고 해야 할까?  바로 이부분이 투명인간의 핵심이 아닌가 판단된다.  투명인간이라는 것은 거울에 비친 또다른 자아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 모두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또 다른 나 말이다.  뭐 대부분 점잖은채 하느라 난 그렇지 않소 라고 말하긴 하지만 어디 사람이 그런가.  인간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인것을.  

보통 사람들에게 투명인간이 되면 무엇을 제일먼저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 돈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단 돈과 관련된 얘기가 가장 먼저 나오는건 진절머리 나는 돈에 너무 데인것도 있을테고 자본주의 체제에 심각하게 함몰된 탓도 있을테고.  보통은 이정도 수준에서 우스개 소리로 씩 웃고 넘어가지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이런 생각이 살포시 들수도 있다.  엄청 이쁜 여배우를 성폭행 해버려??  아님 지나가는 마음에 안드는 누구를 죽여버려??  

이른바 단순히 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면 등장하는 익명성에 기댄 파괴본능이다.  근원성으로의 회귀를 향한 욕망 그리고 그 근원성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파편화된 자기에 대한 확인.  그리고 파편화된 자기에 대한 공격본능에서 이 모든것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결국 투명인간이라는 것은 파편화된 자기에 대한 확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런 투명인간이 아닌 보통의 자신은 완전한 이미지로서의 자신이다.  결국 완전한 이미지로서의 보통의 인간은 투명인간으로 표현되는 파편화된 근원적 자신을 항상 억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와 욕망
자본주의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다양한 욕망들이 탄생하는듯 보이지만 사실 그 욕망이라는 것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욕망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그 욕망을 조장하고 그 욕망을 가지지 못한자를 루저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그 욕망을 가지지 못한자는 그것의 해결을 위해 자연스럽게 범죄 또는 자기파괴로 나아가게 된다.  

보통 이순간 인간이 보여주는 양상은 철저하게 분열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안과 바깥.  겉과 속으로 나누는 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투쟁이 생겨나게 되는바 이것이 바로 분열이다.  사실 이런 분열양상은 평소에도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현상이다.  나도 당신도.  누구든지.  하지만 대부분 사회현실에 잘 적응하는 이성이 이를 잘 억누르게 되지만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 자체가 불안을 넘어 막장상황으로 나가게 되면 굳이 사회현실에 잘 적응해야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다. 
이때 억압된 것의 이성적인것의 지배현상.  즉 안과 바깥의 역전현상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인제 사람의 성향에 따라 외부로의 파괴본능을 표출하게 되거나 아님 내부로의 파괴본능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전된 상태에서 나타나게되는 욕망은 뭉그트러져 근원성으로의 욕망으로 환원된다.  결국 이때 나타나는 본능은 파편화된 자신에 대한 공격본능만 남게 되는 것이다.


마무리
사실 이런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주 간단자명하다.  극중 투명인간이 행하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리만족현상인 것이다.  아무튼 뭐가되었든 요즘세상엔 저런 투명인간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투명인간이 꼭 보이지 않아야만 투명인간이 되는것인가?  

우리가 이 사회의 약자를 외면하는 그 순간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들 스스로 절망에 무력해질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범죄인을 옹호하는것이냐? 라고 묻겠지만 굳이 범죄인만이 문제일까?  끝도 없이 자살하는 사람은 뭐로 설명할 것인가.  이는
결국 사회의 문제이고 이 사회가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보여주는 인간성 말살의 상황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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