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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2000), 낙원 그 환상적 공간 본문

영 화/00's 영화

비치(2000), 낙원 그 환상적 공간

유쾌한 인문학 2010. 7. 20.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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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The Beach)
대니 보일 감독의 4번째 작품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로운 추억이 있는 영화인데 그 추억으로 인해 영화를 반밖에 보지 못했다.  즉 비치에서 낙원과 같은 삶 딱 거기까지만 영화를 본것이다.  카이님이 이 영화와 관련된 일화를 얘기해주셨는데 원래 대니 보일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이완 맥그리거와 함께 하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제작사는 미국시장에서의 흥행을 위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쓰길 원했고 결국 제작사의 의도대로 가게 된다.  아무래도 이 작품 자체가 디카프리오 개인으로서은 타이타닉 이후의 작품이기에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으니 말이다. 

내용이 참 흥미로운데 디카프리오가 태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소위말하는 낙원이라는 곳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낙원이라는 곳은 아주 경치가 아름다운 숨겨진 섬에서 자급자족하는 소규모 공동체 생활을 하는 무리들인데 그곳에 들어가게 되어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결국 그 낙원은 무너지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사라진 스타일
사실 이 작품은 완벽하게 망하게 되다.  하지만 막상 보면 꽤나 재미도 있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영화이다.  특히 낙원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이 흥미로운데 이러한 낙원내에 살아가는 캐릭터들은 앞선 영화인 트레인스포팅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트레인스포팅이나 쉘로우 그레이브 영화의 핵심적 가치는 독특한 이미지의 제시를 통한 기존 가치의 거부와 가치 충돌사이에서 드러나는 혼란감의 제시라고 볼 수 있는데 비치는 독특한 이미지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전부 대체되고 내면적 혼란감은 각 캐릭터들의 행동으로 대체 되게 된다. 

바로 이부분이 이 영화가 망작이 되어버린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니 보일이 유명해진 이유는 아주 독특한 스타일에 존재한다.  정말 영국인이기에 할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련미가 넘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전작품인 인질과 비치로 이어지면서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가다듬기보다는 갑자기 자본과 타협하는듯한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니 적당히 괜찮은 작품이더라도 감독 그 자체가 가지는 텍스트성에 의해서 작품 자체의 내재적 텍스트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라서 그런게 아닌가 판단된다.

사실 이 이후의 작품에서도 그 멋진 스타일은 사실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28일 후에서 부활하는가 했고 선샤인에서 꽤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그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다.  슬럼독 같은 경우는 아카데미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이라 상은 받게 되지만 과연 슬럼독이 그렇게 좋은영화인가?  라고 묻는다면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아카데미를 경멸하는 나의 개인적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더욱이 프리시네마의 총아이자 트레인스포팅을 만든 감독이라면 그 회의감은 더욱 커지게 되고 말이다. 




낙원 그 환상적 공간
흔히 유토피아라고 불러지는 낙원이라는 것은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하다못해 내세관을 가지고 있는 종교들이 제시하는 모든 이상향들도 전부 유토피아라고 볼 수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천년왕국이다.  그외에도 카르디아, 코케인이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에코토피아라는 것이 존재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건 모든 낙원의 공통점은 인간이 자신 주변의 사회라는 공간에서부터 느끼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게 주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욕망은 관계속에서 발생한다.  욕망 자체가 타자의 욕망의 내면화에 불과한 것이기에 모든 관계는 모든 욕망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관계가 피곤한거 아니겠는가?  결국 낙원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속에 살아숨쉬는 욕망의 방정식 그 자체에서 벗어나 관계 외에 존재하는 욕망에의 탐구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복잡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편하게 먹고 살고 싶다 뭐 그런 말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낙원이라는 곳은 아주 폐쇄적인 공간일 수 밖에 없다.  이유야 아주 간단한데 관계가 복잡해지면 욕망의 투사가 가히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많아지게 된다.  욕망 투사의 총량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존의 사회와 다를바가 없기 때문에 지독하게 폐쇄적인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영화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제시된다.  가히 방종에 가까운 태국 도심의 밤과 뭔가 차분하고 안정감이 있는 섬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서 섬이 폐쇄적으로 운영되어야만하는 이유가 끊임없이 도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규모의 공동체 생활도 겉보기와는 달리 대단히 모순적인 공간일 수 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낙원을 꿈꾼다는 것 그 자체야 말로 거대한 욕망의 투사 아니던가.  즉 낙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모인 욕망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 욕망을 위해서 지독하게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곤한다.  상어에게 물려 죽기 직전의 동료를 단지 보기 싫다는 자신들의 쾌락에 반한다는 이유로 갖다 버려버리고 애써 무시하는 모습.  섬 위쪽으로 추방당하게 되는 디카프리오의 모습.  이 모든 모순들의 극점은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 그곳의 지도자인 '살'이 총구를 겨누는 장면이다. 

섬을 공유하고 있던 대마 농부들이 그들에게 총구를 겨누며 더이상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사람이 유입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살'에게 총을 쥐어준다.  디카프리오를 죽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총은 총알이 없는 총이었고 살은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그 순간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낙원을 유지하기 위한 욕망을 위해 행했던 수많은 행위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고 그렇게 낙원은 붕괴된다.


마무리
낙원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곳이다.  모든 욕망은 타인의 욕망의 내면화이다.  그렇기에 관계속에서 끝도 없이 탄생하는 것이 바로 욕망이다.  이런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  그런건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한가지 존재한다면 타인의 욕망의 내면화라는 과정 자체를 차단시키는 것에 존재한다.  결국 내 마음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보고 흔히 성인이라 부르며 추앙하곤 한다.  뭐 어쨌든 망작이라곤 하지만 꽤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왠만한 영화들이 다그렇듯 인간을 탐구하는 대니 보일의 핵심적 주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말이다.  다만 스타일이 아쉬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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