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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2(2002), 존재에 대한 의문

유쾌한 인문학 2010. 10. 2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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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de 2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네번째 영화이다.  첫번째 헐리웃 진출작인 미믹이 헐리웃 시스템와의 갈등으로 인해 망작으로 남게 되었고 그 이후 길예르모 감독은 다시 작가주의로 복귀하여 악마의 등뼈라는 작품을 내놓게 된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판의 미로와 이어지는 작품인데 스페인 전쟁을 바로 알레고리화 시킨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즉 작정하고 만든 영화라고나 할까.  판의 미로라는게 괜히 우연히 나온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 아주 굉장한 수작이 존재하고 그 작품이 바로 악마의 등뼈이다.  악마의 등뼈 이후 그는 다시 헐리웃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때 맡게 되는 작품이 블레이드2이다.

길예르모 감독의 작품답게 특유의 어둠의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이 감독 영화들은 전부다 이런쪽으로 능하다.  어둠,  악,  음습한 이미지.  다크이미지의 대가.  이말 한마디로 이 감독을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어두운 감독이다.  그런데다 드라큐라라는 설정이 들어가고 여기에 화려한 액션, 칼 이런 것들이 삽입되니 아주 멋진 고품격 액션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블레이드 시리즈의 최고명작 블레이드2이다.


존재에 대한 의문
흔히 우리가 보아온 뱀파이어 영화라는 것은 대부분 인간 아니면 뱀파이어로 딱 양자로 나뉘게 되고 뱀파이어로 바뀐자가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오며 느끼게 되는 존재에 대한 고민.  그리고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옴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더 큰 죽음에 대한 공포.  이런 부분을 건드리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측면을 잘 건드린 영화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블레이드는 특이하게 반인간, 반 뱀파이어라는 설정을 가지고 온채 모든 약점은 사라진 완전한 싸움 머신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악역 뱀파이어들은 아주 심플하고 직선적이다.  아주 단순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블레이드와 거대한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1탄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2탄에서 드러나는 욕망은 아주 간단한바 뱀파이어가 가지는 약점을 제거하여 가장 강력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함이고 그 과정에서 그만 실수로 리퍼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괴물은 뱀파이어 왕의 아들 노박이었고 말이다.  아버지에 의해서 축출된 노박은 뱀파이어를 향한 무한에 가까운 증오를 드러낸다. 

뱀파이어를 향한 분노라고 하지만 사실상 아버지를 향한 분노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뱀파이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피를 먹는 종족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집단으로서의 특징이 부각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드라큐라와의 차이점이 바로 이지점에서 발생한다.  여담으로 드라큐라는 루마니아의 왈라키아 지방의 영주였으며 실존인물이다.  루마니아의 대단한 전쟁영웅으로 알려져있다.  그가 이상한 이미지로 그려진 이유는 포로를 대하던 태도에서 비롯된다.  결국 드라큐라는 개인의 잔인성에서 비롯된 개별성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어쨌든 뱀파이어는 집단성이 강조되는 명사이기에 뱀파이어를 향한 분노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로 치환이 가능하다. 

유심히 살펴보면 리퍼라는 새로운 종족과 뱀파이어라는 새로운 종족은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뱀파이어보다 더 집단성이 강조되고 더 강하다고 하는 것 외에는 뱀파이어와 동일하게 아주 심플하고 직선적인 욕망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인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러한 것들을 상상해내는 주된 이유는 저러한 심플하고 직선적인 욕망의 충족에 대한 동경이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하는 말인데 사람이라는 것은 집단성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개체성도 아주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에선 툭하면 집단성을 강조하고 혼자선 살 수 없다는 식을 강조하지만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사고관은 결국 각 개인이 가진 개체성을 부정하는 사고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간 자체를 억압하게 된다.  개체성이 극단으로 억압될때 억압된 욕망은 그 사회가 정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렇기에 사회가 바라보았을때 가장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뒤틀리게 된다. 

이러한 개체성과 집단성의 줄다리기 사이에는 욕망이라는 것이 살아숨쉬게 된다.  욕망을 어디까지 제어하고 어디까지 분출할 것인가?  사실 개체성과 집단성의 줄다리기라는 것은 욕망의 사회적 수용범위의 한계지점을 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뭐가됐든 양극단은 최악이다.  양극단으로 다가가는 일이 역사속에서 가끔식 나타나는데 이럴때 대부분 최악의 대학살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뱀파이어는 이러한 최악중 집단성쪽으로 가게된 형태라고 보시면 된다.

그럼 인간이 왜 이런 집단성을 강조한 저런 괴물을 상상하게 된 것인가?  이 역시 어려울 것 하나 없는 문제로 흔히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인데 혼자선 절대로 못할 금기시된 일들을 여럿이 뭉치면 자연스럽게 해내는 경우가 있다.  여럿이 뭉치면 욕망의 분출이 쉽다는 말이다.  이유는 책임의 공유 또는 분담 때문이다.  이는 집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작게 느껴지는 경향이 발생한다.  그러니 2차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그렇게 쉽게 대학살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죄의식의 분모에 독일인 전체를 두어버렸으니 책임의식자체가 매우 작아지게 된다.  그러니 인간은 적당한 조건만 부여되면 너무나도 쉽게 저쪽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내 정신이 편하니깐 말이다.  이것이 바로 뱀파이어라는 집단을 만들어낸 주된 이유중 하나이다.

하지만 모든 액션 영화가 그렇듯 일단 주인공은 그런것을 대단히 경멸하게 되고 그 내부에서도 회의감을 느끼는 존재가 등장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블레이드와 공주이다.  블레이드와 그 여자가 가지는 생각의 근원은 분명 다르다.  브레이드는 반 인간 반 뱀파이어로 뱀파이어들이 보여주는 행위에 대한 경멸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고민이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그 여자는 순수한 순종 뱀파이어로서 뱀파이어 사회 전체가 보여주는 지나친 집단성에 대한 경도에 고민을 가지게 된다.  결국 따지고 보면 근원은 다르지만 둘의 생각은 동일한바 존재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면에서 보면 노박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보여주는 고민의 이면에는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한가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박과 공주는 대단히 닮은꼴이다.  둘다 뱀파이어 집단 내에서의 개체성의 상실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
여기까지 사고가 진행되면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이 작품에서 의도한바가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내용인데 이렇게 길게 풀어쓴 것이다.  이유는?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  아직까지 이 영화를 안보신분들이 계신다면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론 아주 만족도가 높은 작품이다.  정말 좋아하는 좀비스러운 괴물도 나오고 뱀파이어도 나오고 여기에 정말 좋아하는 배우인 웨슬리 스나입스도 나오고 거기에 액션영화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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