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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은 어디에서 도출되는가?

유쾌한 인문학 2011. 1. 1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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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어떤 연구자가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내놓아 외국에서 큰 인정을 받게 된다.  어느 운동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오게 된다.  이때 나오는 한국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다음과 같다.  "위대한 민족의 승리"  "뛰어난 한민족"  "우수한 유전자"  등등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한편 어느 평범한 개인이 실패를 거듭하여 자살을 하였다는 기사가 올랐다고 해보자.  이때 나오는 한국인들의 반응은 역시 대부분 다음과 같다.  "실패한 자"  "좀 더 노력하지 그랬나?"  "나약한 자"

이 두사건을 바라보면서 행간을 정확히 짚어내야할 필요성이 있다.  둘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벌어지는 부분은 바로 책임의 소재에 존재한다.  즉 전자는 사회와 국가의 탓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철저하게 개인의 탓이 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잘되는건 나라와 민족탓이요 못되는건 개인탓이라는 것이다.  성공은 신화가 되고 실패는 철저하게 짓밟으려 든다.  화려한 신화가 중요한 것이지 그 이면의 실패는 용인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다.  정말 재미있는 현상은 자신이 끊임없이 진보적인 가치를 확인한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저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는 양상을 보여주진 않는다는 점이다.  위대한 유전자와 민족적 우수성을 강조하는덴 똑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역사 속에선 꽤나 많은 것들을 확인 할 수 있는데 현재 한국인이 보여주는 유전자 강조와 혈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습성은 불과 50년전에도 유럽의 독일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무엇하나 다른점을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지독하게 유사한 양상을 보여준다.  민족과 유전자적 혈통의 강조와 내부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설정된 가상적 집단의 창출 그로 인한 특정한 이미지의 부여 마지막으로 공격.

당시 유대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뚜렷하게 대조되는 두가지로 표현된다.  하나는 돈이나 아는 벌레와 같은 아주 경멸의 대상으로서의 태도이며, 다른 한가지는 유대인의 돈과 지식을 이용하기 위해서 행하는 은근한 경외로서의 태도이다. 이러한 경외로서의 태도는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한 태도를 정당화시켜주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되며,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 전체주의적 요소가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유지하기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소극적 환상의 개념적 요소가 필요하게 되는바 이것이 바로 타자에 대한 과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타자를 소외시키는 과정은 타자의 권력에 대한 과장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중과정이다.  쉽게 말해보자면 사실 유대인이라는 집단이 전부다 부자일리도 만무할테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이라는 인간상 역시 존재하지 않은 허상의 것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전형성은 굳이 갖다붙이면 모든 인간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그들을 개념지은 인간의 상상적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구조의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유대인을 그렇게 개념짓는 것은 내부적 억압의 외부적 돌림을 뜻하게 된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으로서의 유대인의 대립 그리고 더 넘어 "우리안의 다름"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 징표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건 이런 현상이 한국내에선 너무나도 쉽게 확인된다는 점이다.  민족적 우수함이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한다.  뻔히 보이는 아닌 것도 이 환상의 유지를 위해선 맞다고 우겨버리는 짓도 서슴치 않게 행한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의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소극적 환상을 만들어내니 그것은 어이 없게도 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해 들어간다.  약한 고리는 위대한 신화에 있어서 쓸모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기도 하며,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환상의 기만성에서 도출되는 불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위대한 환상의 유지를 위해선 이런 측면이 도출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환상의 기만성이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가치관의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치관의 기반위에 근대적 가치관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50년도 안되는 사이에 다 들어오면서 엄청난 혼란을 유발하게 되고 사람들이 중심을 못잡게 되면서 자기 자신의 생존에만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학교교육을 보고 엿같다고 말하지만 학교 교육도 다 이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고 이 사회 전체가 가치관의 혼돈속에 빠져있으니 학교교육인들 그것의 영향을 안받을 수가 없다.  우리사회 학교교육의 특징이 무엇인가?  목적은 오직 하나.  좋은 대학이고 좋은대학의 목적은 오직 하나.  좋은 직장이다.  좋은 직장의 목적은 오직 하나.  나의 생존이다.  결국 우리사회의 학교교육의 목적은 너의 생존을 가르치는 것.  그것만 남아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생존은 단순히 생물학적 삶의 유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한국 사회가 가지는 부의 총량은 전국민을 생물학적 생존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지 오래이다.  중요한건 사회 전반이 가지고 있는 환상으로서의 욕망의 충족이다.  이 욕망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또 다른 형태의 생존이 되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생존에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낳을 수 밖에 없으며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보니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문제는 따로 가는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관의 부재와 기만적 환상에의 집착이 드러내는 하나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가치에 대한 태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결국 허상의 것을 쫓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부작용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부작용이 바로 인간을 향한 태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국격은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가치의 확인에서 도출된다.  G20 백날해봐야 이사회의 구성원이 인간과 인권을 쓰레기로 안다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국격 역시 쓰레기가 된다.  우리는 어디쯤있을까?  아쉽게도 한국이 국격을 찾기에는 좀 부끄러운게 사실이다.  세계최고 수준의 배타적 민족주의, 자신들은 절대 인식못하는 최고 수준의 인종차별주의국가, 심각하게 함몰된 국가민족주의.  전부다 인류 보편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되려 서구에서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기피해야할 것들의 총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나라에서 한국의 국격과 지도적 위상을 확인한다는거 넌센스가 아닐련지.

국격이란 어거지로 세워지는게 아니다.  한 사회가 보여주는 인류보편으로서의 가치의 확인과 그것의 수호의지.  인간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확인을 위한 노력.  이 노력이 시행될때 전세계인은 한국이라는 나라 앞에 절로 존경의 의지를 표현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국격이 아닐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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