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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가 가지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성

유쾌한 인문학 2011. 2. 1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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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인간은 참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게 된다.  문화권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구체적인 주제는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며 창조설화 같은 것들은 모든 문화들이 가지고 있다.  문화마다 각각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세대를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동화 또는 설화라고 부른다.  서양이던 동양이던 동화 또는 그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어린시절 아이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 모델을 하게 된다. 

동화가 가지는 핵심적인 기능은 간단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나름의 교훈을 주고 그 교훈을 통해서 아이들로 하여금 사회가 요구하는 적합한 인물상으로 구성시켜 나가는 것에 존재한다.  즉 간단히 말해 동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교훈을 주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적 담론 또는 이데올로기를 아이들에게 빠르게 주입시켜 나가는 것이 주된 핵심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아무런 의심없이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우리가 언어적 체계를 이해하기도 전에 그냥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적 체계는 인간의 주체성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요소를 가지게 된다.  언어는 거대한 기호의 체계로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구조를 정확히 반영하는 구조적 매체이자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반영한다.  즉 언어는 하나의 거대한 인식의 틀로서 작용하게 된다.  언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체계라면 그 체계는 수십만가지의 기호들의 상대적 관계로서 규정되는 것이고 그속에 존재하는 기호들은 일종의 담론의 구성체로서 의미가 규정되게 된다.

일종의 매트릭스라고 볼 수 있는바 매트릭스는 하나의 거대한 인식의 틀이 된다.  그 틀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매트릭스는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 내부의 프로그램들처럼 매트릭스 내부의 객체에게 목적을 부여한다.  그 부여된 목적을 통해 우리는 그속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찾곤 하지만 결국 매트릭스가 부여한 목적에 불과하다.  구조가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구조속에 속해 있지만 그걸 느끼지도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한다.  구조속에서 나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구조속에서의 선택에 불과하다.  즉 우리는 존재한다기 보다는 존재당해진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우리네 과거 고전 동화를 생각해보자.  흔히 효를 강조하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상당수 존재한다.  이러한 동화의 존재를 통해서 알 수 있는건 막연하게 효를 행하자 식의 사고관과 동시에 그 동화가 만들어진 당시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간단히는 어른을 향한 공경에서 멀리는 역성혁명의 금지로 요약할 수 있는바 이것이 의미하는 핵심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길목의 차단이다.  이는 철저한 신분사회의 유지를 위한 필수적 요소라 할 수 있고 그것을 동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여성억압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되는데 수동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서양의 공주이야기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서양의 대부분의 공주들은 아주 수동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  백설이는 쫓겨나고 신데렐라는 계모때문에 구박 당하고 잠자는 공주는 마법에 걸려 잠만 자고 대부분 이러한 자신의 의지적 측면과는 거리가 먼 주어진 상황에서 반드시 왕자를 통해 구원받게 된다.  이유없이 주어진 억압적 상황과 외부의 힘에 의한 구원은 여성이 가져야할 전형을 잘 보여주게 된다.  이는 한국에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사실 신데렐라가 전형적인 콩쥐 팥쥐 계열의 이야기인데 콩쥐는 계모일지언정 부모에게 효도하고 억압 받다 결국 타인에 의해 구원받는다.  심지어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지는 일까지 불사해버고 어떤 여인은 남편을 기다리가 망부석이 되기도 한다.  이는 정확히 시대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성을 반영하는 이야기들이다.

사실 이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식의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  지금의 관점에선 이상할 지언정 과거의 관점에선 대단히 당연한 것이었고 사실 저것들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그냥 순전히 순객관적인 현상일뿐이다.  형성된 문화가 가장 옳바르고 이상적이라고 만들어진 무엇가를 그 사회 구성원에게 순객관적으로 요구하는 것일뿐이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존칭법을 가지고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구성된 문화가 존재한다면 이는 의심할 필요가 없는 그런 성격의 것이다.  하다못해 오늘날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가 되는 과거시험의 변형된 형태의 시험에 지나친 집착 역시 문화의 연속성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만들어진 체계가 생각보다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점을 잘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혹자는 경제적 안정성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 경제적 안정성 역시 문화적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본질을 파악한다면 인간의 주체적인 존재으로의 구성법 역시 강구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동화 그리고 초등교육의 변화를 통해서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어린 아이들의 문화를 너무 우습게 보고 대충 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어떠한 자아를 심어주고 어떤식으로 구성시켜 나갈지는 그 문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 엄밀한 연구와 체계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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