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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이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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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아마 왠만한 분들은 다 알지 않을까 싶은 영화이다.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몇번째 영화인지는 모르겠다. 워낙에 다작을 행하는 감독이다보니.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시작되는 영화인데 당시로선 리얼리티가 상당하다고 극찬을 받은 영화이다. 아마 이 영화를 계기로 해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나오지 않았을까 판단되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여세를 몰아 퍼시픽에 이르게 된다. 사실 이런 영화나 드라마는 헐리웃이 아니면 만들기 힘든 측면이 있다. 엄청난 물량과 자금이 요구되는 성격의 것이니 말이다.
또 한편으론 아무리 리얼리티가 넘치도록 연출하였다 하더라도 그 어떤 전쟁 영화도 결코 진짜와 가깝게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전쟁 기록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인 피가 강을 이루었다는 말. 이 말은 한치의 과장도 아닌 문자 그대로 눈에 보인걸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만약에서 극단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바다물 전체가 피로 물들어버린 천지가 핏빛이 되어버린걸 묘사해야 할테고 왠만한 고어물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로 잔혹하게 터져버린 시체들이 바닥에 깔려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지독한 현실이고 이 영화는 이런 묘사를 당대에서는 가장 근접하게 하였기에 전쟁영화중 최고의 반열에 오른게 아닐련지.
존재하지 않는 이름
전쟁 영화라는 것은 정말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그리고 흔히 전쟁 명화라는 것들은 대부분 전쟁이라는 상황하에서 군인이 보여주는 주체의 붕괴를 그려내는 작품들이 많다. 또 한편으론 당시 민간인들이 느껴야 했던 고통을 그려내는 작품들도 존재하며 작은 연못을 그런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아니면 그냥 상황을 위에서 아래도 내려다보며 대단히 정치적인 부분만을 표현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뭘까? 군인들 이야기이긴하지만 주체성이 무너져서 고뇌하는 그런 양상이 심각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담담함이야 말로 가장 현실에 가깝지 않을까.
영화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노르망디에 상륙한 이후 엄청난 사실을 밝혀지는데 형제가 모두 참전하여 전원 사망하여 딱 한명만 남은 라이언이라는 인물이 발견된다. 그를 구하기 위해 8명이 길을 떠나게 되는 내용이다. 전쟁통에서 한 가정을 위해서 엄청난 휴머니즘을 발휘하여 길을 떠난 그런 영화일까? 그렇게 보긴 힘들고 중요한건 라이언이라는 이름 그 자체에 존재한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피를 요구하는 극단적 폭력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되갚아주는 대항폭력의 연속체이다. 이곳에서 인간은 남을 죽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무엇을 위해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즉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살아갈 권리가 없는 상태이다. 결국 뭔가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황. 나의 삶 자체가 예비된 죽은자의 시간으로 치환되는 즉 삶과 죽음이 대비되기보다는 하나의 폭력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다.
라이언은 허공에 떠있는 이름이다. 어떤면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살아갈 권리가 없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안에서만 삶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쟁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군인들의 이름 수많은 기표들이 가지는 기의이다. 허공에 떠있는 라이언을 찾아 길을 떠나지만 사실 라이언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되려 그들이 그 길위에서 만나는건 바로 자신들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존재성이다.
이러한 군인들 이름이 가지는 무존재성은 마치 전쟁이 가지는 환상적 기표와 연결된다. 이들은 길위에서 끊임없이 전쟁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그 밑에 흐르는 기의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즉 전쟁이라는 단어 밑에 흘러가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결코 하나의 지시대상 또는 하나의 개념어를 가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은 대단히 허구적인 기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전쟁이 가지고 있는 환상적 기표로서의 성격 아니겠는가?
[영 화/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지옥의 묵시록(1979), 전쟁 그 환상적 기표
마무리 - 전쟁과 한국의 세대갈등
전쟁의 경험이라는 것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까? 사실 우리로선 알 수 없다. 해본적도 없고 눈으로 목도해본적도 없다. 하다못해 교통사고가 난 사체만 보아도 구역질을 해대며 몸서리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 저런 광경과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상상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던 전쟁상황은 인간존재를 확인하기에 어떤면에서 가장 확실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테고 그렇기에 많은 관심을 불러오게 된다. 무엇이 인간을 저렇게 만드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면에서 한국사회는 참 독특한 사회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전쟁 경험세대와 베트남 전쟁 경험세대 그리고 평화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사회구조. 한국은 세대갈등이 보수와 진보라는 희안한 탈을 쓴채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그 근간에는 바로 이러한 전쟁 경험의 유무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참혹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국가를 위하였다는 자부심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만나게 되면서 정당화된다. 자신이 행한 어처구니 없는 행위가 국가주의 위에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절대선이어야 한다. 국가의 절대선이 무너지면 자신 행위의 정당성이 무너지게 되고 그렇다면 주체가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에 이르러 국가의 절대선 자체가 무너지게 되고 여기에서 치환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국 세대갈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마무리 - 전쟁과 한국의 세대갈등
전쟁의 경험이라는 것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까? 사실 우리로선 알 수 없다. 해본적도 없고 눈으로 목도해본적도 없다. 하다못해 교통사고가 난 사체만 보아도 구역질을 해대며 몸서리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 저런 광경과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상상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던 전쟁상황은 인간존재를 확인하기에 어떤면에서 가장 확실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테고 그렇기에 많은 관심을 불러오게 된다. 무엇이 인간을 저렇게 만드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면에서 한국사회는 참 독특한 사회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전쟁 경험세대와 베트남 전쟁 경험세대 그리고 평화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사회구조. 한국은 세대갈등이 보수와 진보라는 희안한 탈을 쓴채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그 근간에는 바로 이러한 전쟁 경험의 유무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참혹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국가를 위하였다는 자부심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만나게 되면서 정당화된다. 자신이 행한 어처구니 없는 행위가 국가주의 위에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절대선이어야 한다. 국가의 절대선이 무너지면 자신 행위의 정당성이 무너지게 되고 그렇다면 주체가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에 이르러 국가의 절대선 자체가 무너지게 되고 여기에서 치환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국 세대갈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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