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 image or real

붉은돼지(1992), 파시즘과 그안에 담긴 두가지 상처.. 본문

영 화/애니메이션

붉은돼지(1992), 파시즘과 그안에 담긴 두가지 상처..

유쾌한 인문학 2010. 2. 5. 13:24
반응형




   1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 근방, 이탈리아의 군인이었던 프로코 룻소는 전쟁의 기억을 잊고자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되어버린다.  그 이후 그는 공적 즉 하늘의 해적들을 소탕하며 살아가는 돼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파시스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로 전직 군인들을 몰아붙여 다시 군대로 돌아오기를 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붉은 돼지를 가로지는 단 하나의 핵심적 주제는 바로 파시즘이다.  절대 주체의 관념 하에서 파시즘 역시 자유로울수는 없다.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자아명증성은 인간을 중심에 놓은채 그 외 객체에 대해 폭력적인 개념짓기 양상을 보여주게 되며 이러한 중심에선 주체라는 것에 반드시 일개인이 올 필요는 없다.  그 자리에 국가와 민족이라는 인간 집단이 자리하게 되면 국가와 민족 중심의 주체개념이 형성되며 그것이 사회의 개인들에게 주입되는 식이다.  이러한 논리하에서 형성된 국가이데올로기는 주변의 국가 및 타민족들에 대해서도 폭력적인 개념짓기 시도를 하게 되며 그것이 제국주의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이 도구에 불과하듯 민족의 입장에서 열등하다고 개념지은 타민족 역시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즉 타민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합리적이고 큰 이득을 가져온다면 정당화되는 식이다.

이러한 국가이데올로기는 국가나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때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독일의 경우는 위대한 아리아인이라는 명목하에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 시도하게 되고 독일 사람들 역시 절망 속에서 그런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  이것이 파시즘이다.  결국 핵심은 근대이성의 도구적 이성으로의 변질이다.  이 이론이 여전히 유효할 수 밖에 없는 주된 이유는 현대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이 근대와 딱히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목적을 위해 자연파괴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고 인간에 대한 억압적 태도 역시 변한 것이 없다.  파시즘 역시 마찬가지로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는 사라졌지만 그와 비슷한 행태 예컨대 일본의 극우인사들이나 유럽의 스킨헤드 등을 통해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이 보여주는 행태는 지나친 자국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차별적 사고관에 불과하며, 저러한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이는 또 다른 파시즘의 시작이 될 것이다.

첫번째 상처

프로코 룻소는 1차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름 전투 중에 추락한 적군을 구해주기도 하는 등 정말 멋있는 군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이제 막 결혼한 친구 베를리니와 함께 정찰비행을 나가게 되는데 그 비행에서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게 되고 대패를 하게 된다.  아군은 전원 사망.  전쟁이 끝나는 마지막 해에 모든 전우를 잃어버린채 프로코 룻소 혼자 살아남게된다.  혼자 살아남은 그는 적기 3대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을 가다 우연히 구름의 평원을 발견하게 되어 구름 위를 고요하게 날아가게 된다.  그때 그는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흘러가는 이상한 구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 구름은 죽은 파일럿들의 비행정이 구름처럼 모여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때 프로코 룻소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분노? 허무?  무엇이 되었든 그때의 경험은 프로코 룻소에게 첫번째 상처로 다가오게 된다.  전쟁이 낳은 상흔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 구름속에서는 아군과 적 따위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비행을 사랑하던 인간들만 남아있을뿐이다.  비행을 사랑하던 한명의 인간으로서 과연 자신들은 무엇이었던가?  이성의 미친 광기 속에서 과연 자신은 한명의 인간이었던가? 하나의 도구였던가?  결국 프로코 룻소는 파시즘이 가장 경멸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바라보는 돼지로 변하여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나태하고 목적도 없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가는 쓸모 없는 존재인 돼지보다 인간이 과연 나은점이 있는지 이것이 바로 프로코 룻소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던지는 질문이다.

두번째 상처

지나와 프로코 룻소 그리고 베를리니는 어린시절부터 친구였다.  그리고 지나는 베를리니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베를리니는 결혼 후 바로 전사하게 되고 지나는 홀로 남아 아드리해의 가수로서 살아가는 중이다.  이런 지나는 프로코 룻소와 한가지 약속을 하게 된다.  낮에 지나가 테라스에 있을때 프로코 룻소가 찾아온다면 그와 사랑을 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낮에 오지 않는다.  오직 밤에만 들릴뿐이다.  프로코 룻소는 지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우정과 사랑이 혼재하는 어린 시절의 친구이면서 자신과 가장 친했던 전우의 부인이며 그와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거기에 자신 또한 어느 순간 전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때 지나가 받을 수 있는 상처.  이런 복잡한 감정의 응어리 때문에 룻소는 지나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로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들 수 있다.  전형적인 여성상에 함몰되지 않은 자주적이면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많이 보여주게 되고 특히 주인공의 위치에 서게 되는 여성은 전체의 대립구도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자주 맡게 된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상징적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이다.  즉 파괴적 남성문화의 상징성과 치유적 여성의 상징성의 대립인 것이다.  붉은 돼지에서는 피오라는 순수한 여자아이가 그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프로코 룻소는 점점 변해간다.  순수한 열정에 영향을 받기도 했을테고 피오가 자신을 신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의구심 역시 점점 사라져 갔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피오가 프로코 룻소에게 키스했을때 붉은 돼지의 마법은 풀리게 된다. 프로코 룻소가 가지고 있던 두가지 상처의 핵심적 내용인 인간에 대한 의문과 분노가 피오라는 여자아이를 통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 뒤 프로코 룻소는 지나를 만나러 갔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돼지라는 마법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인 파시즘의 세상에서 돼지만큼 쓸모 없는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국가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저렇게 실력있는 파일럿이 밖을 배회하는건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에게는 얼토당토 안한 많은 죄목이 붙어 국가의 추적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돌아가지 않는다.  돼지가 된채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뿐이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건 꽤나 많은 인간이 가지고 있을 근원적 욕망이며 그 욕망의 해결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파시즘이든 제국이든 뭐가 되었건 그러한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난채 한마리의 돼지가 될지언정 진정 자유롭고 싶은 프로코 룻소의 이야기였다.





반응형
101 Comments
  • 이전 댓글 더보기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