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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3호(1995), 우주를 향한 욕망과 그 튕겨짐 본문

영 화/90's 영화

아폴로 13호(1995), 우주를 향한 욕망과 그 튕겨짐

유쾌한 인문학 2010. 6. 1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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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3호(Apollo 13)
론 하워드 감독의 11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를 안보신 분이 계실까?  없을꺼라 생각한다.  굳이 영화관에서 안보더라도 명절만 되면 티비에서 주구장창 틀어냈으니 말이다.  아마 열번 이상 보신분들도 수두룩하리라.  아무튼 이 작품은 론 하워드의 입장에서 가장 큰 성공과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해 아카데미에서 상을 편집상과 음향상을 받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아카데미의 취향이 살짝 드러나는데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알량한 휴머니즘 그리고 장르에 대한 배척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나 할까?  뭐가 됐든 아카데미에서 주는 상은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주를 향한 욕망
인간은 과거부터 항상 탐험이라는 것을 즐겨하는 것 같다.  자신의 영역 이외의 부분으로 나아가길 원하고 저 산 너머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호기심에 끊임없이 진출해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호기심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항상 저너머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 보존 욕구도 상당하기때문에 그 너머로 나아간 이후에 그곳에서 조우하게 되는 것에 대단히 배타적인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근대에 나타난 다양한 식민이라는 양상이다.  이것은 일종의 호기심이 가지고 있는 양면적 요소라고 칭할 수 있겠다.  나아감과 머물기를 원하는 양면적 요소말이다. 

그럼 인간은 왜 항상 바깥으로 나가길 원하는 것일까?  이는 공간의 문제로 접근해보면 쉽게 답이 도출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  작게는 가정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넓게는 사회 더 크게는 국가라는 영역안에서 살아가게 되니 말이다.  결국 바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영역에서의 탈출을 의미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또 확인해볼 부분은 왜 인간은 자신의 주변을 영역으로 둘러싸는가?  라는 점이다.  그 이유야 아주 간단한바 자기 보존 욕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결국 영역이라는 것은 한편으론 머물기를 원하는 보존욕구와 또 한편으로는 벗어나길 원하는 나아감의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인간의 태아적 시절부터 관찰되는 부분이다.  태아시절 인간은 크게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너무나도 아늑하고 완벽한 공간인 모태에서의 머뭄이다.  그곳은 가만히 있으면 영양분이 공급되고 항상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어 따뜻한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번째로 그 모태에서 분리되고자 하는 목적도 동시에 가지게 된다.  - 욕망이라고 해야 할지 목적이라고 해야 할지.  태아가 욕망을 가지고 있을까? -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두번째 목적을 달성하게 되고 항상 첫번째 목적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회귀성이다. 

이러한 태아시절의 경험을 통해 인간은 자연스럽게 외부로 뛰쳐나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만약 항상 머물기만을 원했다면 지금과 같은 전지구적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끊임없이 뛰쳐나가 전 지구의 왠만한 부분에는 다 진출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기도 한다.  나아가긴 했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배타적 성향말이다.  이 배타적 성향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부작용이 바로 인종차별이다.  

이 인종차별이라는 양상도 상당히 재미있는지라 짧게 언급해보자면 많은 텍스트를 살펴보면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배타적인 양상을 보이지 않으며 나아간 사람들 즉 외부인이 그곳의 사람들을 향해 배타적인 양상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 아메리칸 대륙으로 처음 유럽인들이 진출하였을때 역시 마찬가지의 양상이 드러나게 된다.  인디언들은 그들을 환영하였지만 유럽인들은 그들을 학살하게 되고 심지어 병까지 옮겨 말살시켜버리게 된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런 현실을 간단히 언급하며 진보를 위한 희생정도로 폄하하는 양상을 보여주며 이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명국이 가지고 있는 일련의 양상들이다. 

하지만 과연 뭐가 진보라는 것일까?  그들의 문명이 열등한 것인가?  다른 것은 존재하되 열등한건 존재하지 않는다.  열등하다고 하는 것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지정한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는 앞선 무기를 가진 인간들은 그들을 열등으로 규정하고 진보를 위한 희생을 운운하며 말살시켜버리게 된다.  누구를 위한 진보이며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아무튼 다시 돌아와 20세기에 돌입한 인간은 인제 더 먼 나아감을 꿈꾸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영역이 지구라는 것으로 엄청나게 확대되니 더이상 갈곳이 없기에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멈추되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태아적 시절에 경험한 나아감의 기억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우주 개발이고 그중 한 사건이 바로 아폴로 13호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 튕겨짐
아폴로 13호 사건은 어떠한 의미로 바라볼 수 있을까?  단순히 우주로 나아가다 실패한 사건?  몇번 성공하여 관심도 못끌다 사고가 생기니 전 지구적 관심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대단한 휴머니즘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사건?  이것들은 영화가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맥락인 것이고 그런 맥락이야 흔한 것이니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끼겠다. 

아폴로 13호의 실패가 의미하는 것은 나아감의 튕겨짐이라고 볼 수 있을듯하다.  이 튕겨짐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역시 공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서 판단할 수 있을듯하다.  특정한 공간이 하나의 영역으로서 줄 그어진다는 것은 그 내부와 외부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부의 공간이 하나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함과 동시에 그 외부 역시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공간으로 상정되게 된다.  물론 그 외부는 경우에 따라서 수십 수백의 공간으로 나누어질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되었건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때는 전체가 하나의 외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공간 사이에는 반드시 경계가 존재하게 되고 그 경계의 두꺼움은 두 공간사이의 이질감에 따라서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러한 경계의 두꺼움은 현재 한국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바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개의 공간과 그 공간의 이질감의 크기만큼 그 경계의 두꺼움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서 그 경계의 두꺼움은 얇아지기도 하고 더욱 두꺼워지기도 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영화로 돌아가 아폴로 13호는 그 경계를 뛰어넘어 너머의 공간으로 안착하길 바랬지만 그것에 실패하여 그 경계에서 튕겨져 나오게 된다.  그 이유는 뭐 다들 알다시피 지구라는 공간과 지구를 둘러싼 우주라는 공간이 가져오는 극단적인 이질감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마무리
이상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았다.  재미있는 영화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영화를 보고 지겨움을 느끼기는 힘들 것 같다.  우주비행사라는 설정도 흥미롭고 우주는 그다지 나오지 않은채 우주선 내부만 주구장창 나오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도 대단히 흥미를 돋구는 영화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기존의 우주 영화들이 허구에 기반한 것이라면 이 영화는 사실에 기반한 것이기에 더 그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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