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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서커스(1928), 서커스의 아이러니 본문

영 화/고전 영화

찰리 채플린의 서커스(1928), 서커스의 아이러니

유쾌한 인문학 2010. 8. 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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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Circus)
1928년 대공황이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서서히 터지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영화이다.  황금시대에서는 목소리를 삽입하더니 이 작품에서는 다시 자막으로 돌아갔다.  즉 여전히 무성영화라는 것이다.  문득 느낀건데 채플린 영화에 계속 나오는 저 여자가 누군지 참 궁금해진다.  뭔가 대단한 관계가 있는듯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채플린 작품을 바라볼때 항상 잊지 말아야할 점은 20년대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조상님들이 일제의 만행에 고통받던 시절에 나온 영화들이다.  그렇기에 현대적 잣대를 엄격히 드리대어서는 안된다.    

내용을 간단히 말해보자면 서커스가 있고 그곳엔 악덕 고용주가 존재한다.  우연히 채플린은 서커스에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대인기를 끌지만 고용주는 그에게 잡일을 잔뜩주어 정당한 대가의 지불을 거부한채 채플린을 속이게 된다.  한편 그 문제의 악덕 기업주의 딸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채플린은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그녀의 도움으로 서커스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에 이르지만 그녀는 잘생긴 줄타기 곡예사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 

어느날 공연을 앞두고 곡예사 남자가 사라지게 되자 고용주는 보험에 들었다는 말을 남긴채 채플린을 줄위로 올리게 된다.  무사히 살아내려온 채플린은 고용주가 여자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이에 고용주를 구타하여 쫓겨나게 되고 그녀 역시 도망나오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도로 되돌리기 위해 그는 줄타기 곡예사에게 반지를 주며 결혼을 하라고 하게 되고 그렇게 둘은 결혼하여 다시 서커스로 돌아가고 채플린은 쫓겨난채 홀로 남겨진다.




악덕고용주와 서커스의 아이러니
자본주의 체계의 출현과 점진적 발전과정과 근대 이성에 대한 믿음과 논리에 대한 광신이 불러온 결과는 인간의 도구화이다.  인간의 도구화가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사건이 바로 2차대전 당시의 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중세시절 종교라는 이름아래 존재하였던 강압적 터부 아래에서 살아가다 근대 이후 점점 생겨난 개방이 극단으로 나아가며 소위 막장상황으로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지나친 규제도 문제지만 지나친 개방 역시 문제라는 점이다.  오직 논리에 대한 맹목적 신뢰 그리고 자유의 극단적 맹신은 어린 아이마저 20시간씩 노동하게 만드는 인간 도구화의 극치를 보여주게 된다. 

물론 19세기 후반에 비하면 조금 나아졌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20세기 초반에도 인간 도구화와 노동자 탄압은 진행형인 상황이다.  이러한 측면은 채플린 영화 전반에서 드러나는 주제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전반을 흐르는 물신적 성향 따위들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을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바로 서커스이다.  이렇게 대놓고 악덕 고용주를 비판하는 작품은 채플린 장편영화중에서는 서커스가 처음이다.

인상 깊은 장면들이 몇가지 얘기해보자면 첫째 자기 딸을 서커스 단원으로 사용하면서 제대로 못한다고 학대하는 아버지로서의 고용주의 모습 즉 일단 딸 마저도 도구화시켜버린 인간성 상실을 들 수 있겠다.  당시 이런 현상이 만연했던걸까?  두번째로는 위의 첫번째 스샷에서 볼 수 있는 거울씬이다.  거울방안에 들어가면 채플린은 수많은 채플린으로 반사되어 나타나게 된다.  당대 노동자성을 잘보여주는 측면이다.  즉 모던 타임즈의 기본적 주제의식이 이 거울씬 하나에 다 들어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른바 형식화되고 고정되어있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과도 같은 근대 노동자의 본질이다.  위의 두번째 스샷인 우리에 갇히는 씬도 마찬가지로 바라볼 수 있겠다.  체계안의 갇힘 그리고 사자와 채플린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노동자의 근본적 한계같은 것 말이다.

결국 서커스 제목과 서커스라는 영화적 배경은 이러한 사회 전반의 아이러니를 잘 들어내게 된다.  당대의 사회 모습들이 얼마나 웃기고 코믹했겠는가?  인간 세상 자체가 한편의 블랙 코미디 같은 그런 아이러니.  세상 전체가 웃기지도 않는 서커스판 아니겠는가?  마치 서커스와 같은 근대성 말이다.  물론 현대 역시 다를바는 없다.  인간사는 결국 서커스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마무리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다.  살짝 지겹기는 하지만 그래도 볼만은 하다.  특히 가장 마지막 장면에 홀로 남겨진 채플린의 뒷모습은 상당히 멋지면서 쓸쓸한 장면이 아닐련지.  
이 영화에서 기술적 진일보를 한가지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위의 첫번째 스샷이다.  저 스샷에 등장하는 두 인물 모두 채플린인데 상황을 설명해보자면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이 줄타기 곡예사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니 화가나서 자신이 그 곡예사를 때리는 상상을 저런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20년대에 이미 이런 시도가 나왔다는 점이 대단히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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