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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2005), 배트맨의 상징성과 주체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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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2005), 배트맨의 상징성과 주체성

유쾌한 인문학 2010. 6. 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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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Batman Begins)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4번째 장편 영화이다.  정말 뛰어난 감독이지만 사실 그의 전작들인 미행이나 메멘토 그리고 인썸니아가 그렇게 흥행에 대단한 성공을 거둔 작품인가? 라고 묻는다면 사실 회의적인게 사실이다.  물론 기본 이상의 성적은 거두었겠지만 그래도 헐리우드라는 곳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그정도의 흥행과 성공은 성공이라고 보기 힘든게 사실이니깐.  그런데다 놀란 감독이 보여주는 특유의 작가 정신 같은걸 생각해본다면 뭔가 큰 대박이 터지지 않는다면 까딱하면 예술 감독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농후해 보이는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배트맨의 리메이크이다.  사실 팀버튼의 배트맨이라는 작품은 대단히 스타일리쉬하고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현대의 표현주의의 대가로 칭송 받을 정도의 작품인데 이러한 작품의 리메이크라는건 어찌보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다.  어느정도 이목을 끌 수 있고 완성도가 보장이 된다면 전 세계적인 흥행에는 성공하겠지만 그것에 실패한다면 놀란의 영화 인생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독이 든 성배라고나 할까.

그렇다보니 이런 상황에선 엄청난 자금력 앞에서 자신의 스타일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팀버튼의 그것에 기대려고 하는 성향이 생기기도 한다.  만약 놀란 감독이 그렇게 스타일을 시도했다면 영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그의 선택은 팀버튼의 그것을 넘어선 자신만의 스타일의 재창조 그리고 표현주의에서의 과감한 탈피와 동시에 무거운 리얼리즘의 추구이다.  사실 이러한 리얼리즘의 추구는 그가 앞서 보여준 작품들의 일관된 주제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단순한 사실의 모사를 넘어 본질을 향한 추구에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그런 측면에서 놀란 감독은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어 자시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것이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브루스 웨인의 어린시절의 기억
일단 극중 주인공인 브루스 웨인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는 크게 두가지 핵심적인 기억을 가지게 된다.  첫번째로 그의 어린시절을 보면 우물에 낙하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친구와 놀다가 그만 실수로 우물에 낙하하게 되고 그 우물 속에서 극한의 공포에 빠져들게 된다.  그때 박쥐가 나타나게 되고 그로 인해 그 자신이 느끼는 공포라는 감정을 박쥐라고 하는 한 매개물에게 전가하게 된다.  그렇게 박쥐를 두려워하는 한 소년이 훗날 영웅이 되어 그 박쥐를 자신의 심볼로 삼게 되는 것인데 이게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우물이라고 하는 곳은 폐쇄적이면서 깊이가 있는 공간이다.  얼핏보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기에 항상 다양한 상상력의 매개물이 되곤한다.  물론 그 상상들은 대부분 공포와 관련이 되고 말이다.  이러한 우물이라고 하는 장치는 브루스가 보여주는 내면과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좁고 폐쇄적이고 깊은 우물과 그 속에서의 공포는 자신의 내면의 두려움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깊이를 나타나는 하나의 장치가 되고 그러한 내면의 공포가 가지는 모호한 원인을 박쥐라는 것에 전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면의 공포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주 원인이 되는 것이기에 이를 영화적 측면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박쥐라는 매개를 이용한다고 보면 되겠다. 

아무튼 그런 어린시절 그 우물의 기억과 동시에 또 다른 기억을 하나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부모님의 죽음이다.  오페라를 보다가 자신의 요구로 인해 일찍 나오게 되고 하필 그때 부랑자를 만나게 되어 부모님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  어린 시절 다가온 부모님의 죽음과 그 죽음의 인과관계에 자신의 행위가 일정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우물의 기억과 쌍벽을 이루는 또다른 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기억은 공포라는 하나의 귀결점으로 제시된다.  부모님의 죽음과 그 죄책감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본질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가지 어린시절이 기억들은 브루스의 삶의 방향을 많이 바꾸게 된다.  학창시절은 고담시를 떠나서 지내는 것으로 보이고 청년이 된 그가 고담시로 돌아오는 이유는 부모님을 죽인 자의 가석방 문제때문이다.  결국 가석방은 이루어지게 되고 이에 브루스는 그를 살해하려고 하지만 되려 고담시 부패의 상징인 팔코니의 부하가 그를 살해하게 된다.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그 복수의 대상을 다른 범죄자가 처결함으로써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 그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되고 어느 집단을 만나게 되어 그곳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  이 집단이 보여주는 특징이라면 선과 악의 완벽한 이분법에 기반한 철저한 선의 수호의지이고 그 선이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면 즉 소돔과 고모라가 반복된다면 그 도시 전체를 파괴해버리는 극단적 과격단체이다.  이 단체에서 훈련을 잘 받은 것까진 좋았는데 그들은 브루스에게 정의의 이름으로 어이없는 살인을 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이를 브루스는 거부한채 그곳을 파괴해버리고 고담시로 돌아오게 된다. 


Copyright (c)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배트맨의 상징성과 주체성
고담시로 돌아온 그는 인제 배트맨이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브루스 웨인은 두개의 주체로서 나뉘게 된다.  브루스 웨인은 다양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시절의 우물 낙하기억에서부터 시작하여 부모님의 죽음까지.  이러한 기억에서 비롯되는 내면적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 배트맨이 되기 이전의 브루스 웨인의 삶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내면적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그 두려움을 자신의 외면적 표피로 사용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배트맨이다.  브루스 웨인이 만들어낸 하나의 허구적 존재로서 이러한 허구라는 외면적 표피를 이용하여 자신의 내면적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따라서 배트맨은 자신을 상징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게 된다.  배트맨 의상이라던지 배트맨 표식을 하늘로 쏜다던지 등으로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  배트맨이라는 상징을 지속적으로 바깥으로 내보이는 행위는 자신의 내면적 두려움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즉 자신의 두려움을 외피로 사용한채 이를 역전시켜 외부에서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자신의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브루스 웨인이 자신의 내면적 두려움에서 벗어나긴 했는데 그 벗어남은 배트맨이라고 하는 허구의 상징을 통해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지점에서 그의 주체성의 분열이 발생한다.  즉 배트맨이라는 허구의 상징을 만들려고 시도하려는 그 순간 경계선이 세워지게 되고 그 전의 브루스 웨인과 그 후의 배트맨으로 나뉘게 되는 것인다.   그렇다면 브루스 웨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배트맨인가?  브루스 웨인인가?  

무엇이 되었든 그가 불행했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단 하나의 길은 바로 허구의 가면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며 여기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사실은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배트맨이라는 마스크를 통해 상징계로 진입하는데 성공한다는 점이다이것이 조커와의 큰 차이점이다.  이 부분이 대단히 놀라운 부분이다.  왜 놀란 감독은 배트맨 비긴즈를 만들었을까?  어차피 팀버튼의 배트맨은 바로 조커의 등장으로 시작하게 되니 배트맨 비긴즈가 없이 바로 다크 나이트를 제작해도 문제될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배트맨 비긴즈를 만들게 된 이유는 그가 전작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던져온 주체성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바로 배트맨이라는 허구의 가면을 통해서 말이다.



마무리
사실 배트맨이라는 존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적 두려움 또는 억압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지만 주된 선택은 또다른 '나'의 창조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새로운 나를 만들어냄으로써 과거의 나와 단절을 도모하게 되고 그러한 단절을 통해 과거의 나를 이루고 있던 다양한 억압적 요소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사회적으로 바라보면 흔히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따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피해자가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가해자와 비슷한 유형의 가해자로 변모하게 되는 주된 원인은 배트맨의 그것과 다를바 없다.

아무튼 새로운 나는 과거의 나와 단절되었기에 다른 기억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쌓아올려 새로운 나의 주체성을 새롭게 확립할 수도 있다.  결국 핵심은 기억이고 그 기억의 쌓아올림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기억을 쌓아올리느냐?  어떠한 기억을 취사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주체성이 결정되니 말이다.  결국 놀란 감독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말하고 싶은 단 하나의 주제는 바로 기억과 주체성의 문제와 이러한 문제들이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양상들이다.

이시점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어떠한 가면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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