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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2002), 이민자의 가치관 투쟁과 국가의 욕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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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2002), 이민자의 가치관 투쟁과 국가의 욕망

유쾌한 인문학 2010. 4. 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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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9번째 장편영화이다.  스콜세지 영화세계에서 뉴욕이라는 장소는 정말 땔래야 땔 수 없는 스콜세지의 핵심적인 장소인바 이번에 그는 뉴욕을 아주 과거로 돌려 초기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내게 된다.  사실 뉴욕과 이민자의 문제를 그려내면서 초기 이민자의 문제를 생략한채 논한다는건 어불성설 아니겠는가?  결국 그는 1846년 과거로 돌아가게 되고 이를 통해 그가 평생을 놓고 완성하고자 했던 이민자 문제의 시작점을 그려내게 된다.

인상 깊은건 이 작품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스콜세지 감독의 콤비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로버트 드니로에 이어 스콜세지 감독의 또다른 콤비의 탄생을 예고하는 작품이 바로 갱스 오브 뉴욕이다.  이 작품 이후로 디카프리오는 스콜세지 감독의 이후 모든 작품들에 출연하게 된다.  개인적인 소망으론 스콜세지 감독이 언젠가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하비 케이텔까지 출연시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최고의 갱스터 영화를 하나 만들면 정말 끝내 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용은 대단히 간단하다.  링컨 당시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채 이민자들과 미국 토착민들의 충돌을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시작하자 말자 아주 잔인한 패싸움을 보여준다.  이민자들과 토착민들 사이에서 뉴욕의 패권을 놓고 싸우는 싸움인데 그 양상이 아주 잔인하다.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나타나는 잔인함인데 사실상 고어적인 특성만 없다뿐이지 지독한 양상을 보여준다.  예컨대 칼이 베어들어갈때 피솟아 오르는 피의 표현 같은 것이 인상 깊은데 사람이 얼마나 피를 많이 흘리는지는 아마 사고현장을 본적이 있는 분이라면 다 이해하실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너무 잔인해서 폭력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스콜세지가 그려내는 폭력은 잔인함을 팔아먹기 위한 헐리우드 자본의 욕망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있는 그대로의 폭력 그 자체를 제시하는 폭력이다.  즉 그가 그려내는 폭력의 리얼성이 영화의 무게감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난 솔직히 되려 영화를 가지고 폭력을 멋있게 표현하여 미화하는 작품들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총한대 맞으면 피한방울 안나오게 그려내고 뭔가 폭력 자체를 낭만적으로 그려내는 일련의 영화들이 현실을 너무 심각하게 왜곡한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영화 자체가 링컨 시대를 그려내는 시대극이다보니 관객에 따라서는 지겹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시대극 특히 외국의 시대극이 잘 안맞는 분들은 상당히 지겨울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측면때문일까?  이 영화에 대한 일반의 평은 그다지 좋은편은 아니다.  역시 지겨운게 문제인 것이다.


Copyright (c) Touchston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초기 뉴욕의 이민자 사회와 가치관의 충돌
영화를 보면 정말 끝도 없이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국가가 당시 유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손으로 왕을 뽑을 수 있고 그 왕은 몇년마다 교체가 된다는 점 그리고 미국은 형식적이로나마 노예 이외에는 특별한 신분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이다.  그런데다 그곳은 영토는 아주 넓지만 사람은 극히 부족한 그런 곳이기에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게 된다.  이곳에선 누구나 노력하여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뭐랄까.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사회가 내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을 국가 슬로건으로서 내건 하나의 가치관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내세우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 대단히 허구적이면서 허상적이다.  극히 일부의 성공사례를 제시하면서 이를 확대하여 '보라 믿으라 따르라' 라는 식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에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뛰어들게 된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이 그속에서 삶을 살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얼마나 불가능한지에 대해서 온몸으로 깨닫게 되고 이러한 경험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과 일치하게 된다. 

뭐 멀리 볼거 없이 우리나라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사회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는 말을 하면 극소수 몇몇 성공사례를 들어 보라 성공하지 않았느냐? 다 너의 잘못이니라.  이는 결국 모든 성공은 사회가 모든 실패는 개인에게 돌리는 아주 모순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은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위대한 아메리카가 준 기회이자 위대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당신에게 준 선물이 되는 것이 되지만 실패한다면 바로 너의 잘못이라는 개인 책임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이러한 측면들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 가지는 허상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며 국가주의적 태도와도 일련 맥이 닿아있는 태도이다.

아무튼 저러한 가치관을 내세운채 끊임없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지만 사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온갖 국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민자로 들어온다는 것은 그 이민지 집단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가치관들이 넘쳐 흐른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즉 온갖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가치관들의 충돌 현상이다.  뭐 사실 따지고 보면 외국에서 건너온 그들 각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하나의 집단으로서의 양상을 보였던건 아니고 기존에 존재하던 가치관의 억압에 의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뭉쳤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여담으로 같은 집단내에서도 그들은 다시금 파편화된 인간으로서의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은 우리네 삶을 반추해보았을 어렵지 않게 예상되는 것이고 그것을 설명하는 작품이 '좋은 친구들'이다.  좋은 친구들이라는 작품은 이태리 이민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어떤 집단적 요소 내부에 담겨져있는 개별화된 인간으로서의 모순을 마피아라는 측면을 통해 드러내는 작품으로 현대 갱스터 3대 영화에 속할 정도로 대단한 작품성을 보여준다.

어쨌든 초기 미국사회에서 저러한 가치관의 충돌은 주로 토착민들의 횡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그들은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스스로 쟁취하여 투표권을 얻어낸 사람들이기에 자연스럽게 이민자들이 마음에 안들 수 밖에 없는거 아니겠는가?  그들을 보고 욕할거 하나 없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은 어느사회 어느 집단을 가더라도 항상 나타나는 양상이니 말이다.  당장 당신이 피흘려 얻어낸 기득권을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자들과 공유해야 한다면 그게 용납이 되겠는가? 

다만 이러한 측면이 아이러니한 것은 기존에 살아가던 토착민 역시 따지고 보면 이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건너온 그들은 북아메리카에서 살아가던 원주민들을 학살하여 그 땅의 지배권을 획득해나간 것이니 말이다.  결국 순수 미국인이라는 것도 자기들이 진짜 주인이라고 우기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자기들도 결국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측면을 확대하여 제시하는 작품이 95년도 카지노이다.  카지노와 갱스 오브 뉴욕은 은근히 맥이 연결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건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이민자들은 아일랜드인이라는 점이다.  스콜세지 감독의 천재적 발상에 경의를 표한다.  이민자 문제와 그 충돌적 양상을 아일랜드인으로 표현해내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설정력인가? 


Copyright (c) Touchston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구조 내부에서의 가치관 투쟁과 국가의 욕망
만약 이 영화가 이정도에서 끝냈다면 스콜세지 감독은 그 역량이 다했다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민자 문제는 이전 작품에서 끊임없이 얘기해 온것이기에 가치관의 충돌이라는것 정도의 새로움으론 만족을 주기 힘드니 말이다.  하지만 스콜세지 감독은 이 영화의 마지막에 놀라운 결론을 내려버린다.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면 다시금 토착민 세력과 이민자 세력이 충돌하게 된다.  끝도 없이 서로서로 테러를 행하며 갈등양상은 더욱 깊어지다 최후의 장면에선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군인들과 군함이 등장하게 되고 그 군인들은 포를 쏘악아며 토착민 이주민 할 것 없이 모두를 학살하기에 이른다. 

이걸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나름 자신들은 토착민이고 진정한 아메리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더 큰 구조의 입장에서는 이민자들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되려 그들이 보여주는 배타적 양상은 국가의 안정에 큰 위협이 되니 둘다 없애버리는게 옳다는 상황이다.  결국 서로 대척하던 두 집단이 국가의 폭력앞에서 너무나도 나약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서로 도와서 그곳을 탈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물론 두 주인공은 개인적 원한의 문제가 같이 얽혀있기에 결국 끝장을 보지만 말이다. 

결국 이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건 아메리칸 드림이 가지고 있는 국가주의적 양상의 확인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꿈꾸는 욕망 앞에서 개인들이 꿈꾸는 가치관과 욕망은 사실상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  국가의 욕망은 주로 팽창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팽창과정이 간단하지는 않게 되는바 많은 내부의 논란이 생겨나게 된다.  마치 인간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때 마음속에서 다양한 대립상이 생기듯이 말이다.  그러다 가끔 인간은 어느 순간이 되면 마음속에서 다양한 대립상이 사라지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는데 그때 실로 놀라운 능력을 보이곤 한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부의 다양한 대립상을 없애고 국가의 욕망인 팽창을 이루기 위한 순수한 욕망의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파간다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과정이 완성이 되면 바로 목적성이 사라진 오직 폭력 그 자체가 목적성을 띄게 되고 존재 그 자체가 자기목적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되면 그 존재는 자기목적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서 아주 순수하게 된다.  그렇게 국가는 나라 전체의 안정된 팽창을 위해 아주 순수한 1가치관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내부에서 개인들이 국가의 입장에선 대단히 무의미한 싸움을 해대니 어찌 마음에 들겠는가?  본보기로 전체를 쓸어버리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을터.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것이다. 


마무리
아주 흥미로운 영화이다.  스콜세지 감독은 정말 이민자 문제를 가지고 이 작품 포함 총 6개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6개의 작품이 그려내는 뉴욕과 이민자의 문제는 아메리칸 드림의 비판을 대주제로 삼은채 전부다 약간씩 다른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그렇기에 항상 같은 말을 하지만 영화들은 전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주로 문제시 삼는 소주제는 대주제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들의 갈등적 양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해부하여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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